미셀 푸코, 『자기해석학의 기원』
철학자 푸코가 자주 말하는 사건이 있다. 일명 뢰베의 찬물 샤워 사건이다. 뢰베는 정신과 의사다. 뢰베는 환자에게 치료라는 명목으로 찬물 샤워를 강제로 시켰다. 그는 환자에게 족쇄를 채우고 구속복을 입혀 저항하지 못하게 만든 후, 갑자기 차가운 물을 위에서 퍼붓는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찬물은 환자에게 극한 충격과 두려움 그리고 한기를 주었다. 뢰베는 벌벌 떨고 있는 환자에게 “나는 미쳤습니다!”라고 외치게 했다. 환자가 자기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뢰베는 찬물 샤워의 강도를 높였다. 환자가 저항하거나 비명을 지를수록 찬물 샤워는 더욱 잔인하게 반복됐다.
푸코는 치료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에 주목한다. 뢰베는 의사였다. 당시 찬물 샤워는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행위였다. 뢰베에게 찬물 샤워는 폭력이 아니라, 의사라는 전문가가 행하는 의학적 치료 행위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눈엔 어떤가? 물고문과 전혀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전문가에 의한 의학적 치료를 물고문으로 변질시킨 그 원인은 무엇인가?
푸코는 그 원인을 권력의 관리 욕망에서 찾는다. 권력은 언제나 질서 있고 깨끗한 사회를 원한다. 질서 있고 깨끗한 사회는 권력이 잘 작동되는 정상적인 사회이다. 정상적인 사회는 비정상적인 사람을 관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사회가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인즉슨, 지배층이 언제든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권력은 비정상적인 사람을 치료해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거나, 치료가 불가능할 경우에는 격리하고 통제해야 할 필요를 강하게 느낀다.
여기서 핵심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상이란, 질서에 잘 순응하고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반면, 비정상은 통제하기 어렵고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다. 정신병 환자, 범죄자, 노숙자, 거지, 성소수자까지 역사적으로 비정상으로 분류돼 왔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당대의 지식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잣대를 제공하고, 권력은 지식과 결합해 사람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게 된다.
푸코는 이렇게 권력과 결합한 지식 체계를 ‘에피스테메(épistémè)’라고 불렀다. 에피스테메는 단지 학문적 지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정 시대에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모든 앎을 포함한다. 예컨대, 18세기와 19세기에는 의학이 강력한 에피스테메의 일부였다. 정신의학은 미친 사람을 판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과학으로 인정되었다. 푸코는 뢰베의 사례로 에피스테메가 어떻게 사람들을 통제하는지 보여주었다.
앞서 내가 던졌던 질문이 있었다. “왜 우리 학교는 경쟁 이데올로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을까?” 푸코의 연구가 내게 답이 되었다. 당시 학교는 경쟁을 인간 성장과 국가 발전을 위한 정상적인 교육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시험 점수로 줄 세우고, 특별반과 열등반을 나눠서 끊임없이 나와 남을 비교하도록 부추겼다. 나아가 경쟁 이데올로기는, 군사 독재 권력이 학생들을 반공 투사와 산업 전사로 키우고 관리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학력고사로 대표되는 경쟁제도는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자연스럽게 정상과 비정상으로 바꿨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마치 병처럼 치료해야 할 비정상이 된 것이다.
당시엔 체벌이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법으로 통용되었다. 내가 다니던 사립 중학교의 영어 선생님도 그랬다. 그분은 학창 시절 대부분을 일제 강점기 아래에서 보냈다. 아마도 그분은 제국주의 교육을 온몸으로 배워 무의식적으로 학생들에게 옮겼을 것이다. 젊은 선생님들도 사정은 대체로 비슷했다. 우리 역사상 가장 폭력적이던 군사 독재 아래에서 배우고 가르쳤으니, 경쟁과 체벌의 교육효과를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선생님들도 피해자다. 그분들에게 경쟁과 체벌은 마치 뢰베의 찬물 샤워처럼, 제자를 바르게 만들기 위한 충격 요법이었던 셈이다. 뢰베가 환자를 괴롭히려던 것이 아니었듯, 선생님도 나를 해치려던 건 아니었다. 뢰베가 환자의 회복을 바랐듯, 선생님도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들도 이데올로기가 만든 가상 현실에서 제자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세상에 나쁜 사람은 하나도 없다더니, 그 말이 아주 근거 없는 얘긴 아닌가 보다.
푸코가 『자기해석학의 기원』에서 주장하고 싶은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푸코는, 내가 나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 즉 ‘자기해석’에도 권력과 에피스테메가 작동한다고 보았다. 푸코의 질문은 단순하다. 인간의 길고도 긴 역사 속에서 자기해석의 방법만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까? 세상에 딱 하나 남은 진리는,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이다. 푸코는 자기해석 역시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는 걸 『자기해석학의 기원』에서 보여준다.
푸코는 고대와 중세에서 행해진 자기해석을 대조해 설명한다.
먼저 고대에서 행해진 자기해석은 이렇다. 내가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귀족으로 태어났다고 치자. 푸코에 따르면 나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는 가문과 국가가 원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길 원한다. 그러나 오늘 나의 행동은 그렇지 못했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조상의 격언과 스승의 말씀을 잘 배우고 따라야 한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격언과 말씀을 더 배우고 익혀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격언과 말씀은 나를 훌륭한 사람으로 바꿀 진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힘이 내 삶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 것이다.
이어서 중세의 자기해석을 알아보자. 내가 중세 수도원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치자. 푸코에 따르면 나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순결한 백성이 되길 원한다. 그러나 오늘 나의 생각과 마음은 나약하고 죄에 물들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 하나님의 순결한 백성이 되려면 내 영혼이 십자가의 피로 용서받아야 한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 사탄은 내 영혼 어딘가에 죄를 뿌린다. 나는 사탄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 생각과 마음을 항상 사제님께 완전히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고해 성사를 통해 나약하고 더러운 나 자신을 진실의 빛 앞에 드러낼 수 있다. 결국 나의 의지를 내려놓고 나를 철저히 포기할 수 있게 되리라. 비로소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
푸코에 따르면, 자기해석에서 고대 그리스-로마와 중세 기독교는 아주 다르다. 첫째, 자기해석의 기준이 다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옛 격언이나 스승의 말씀이 자기해석의 기준, 즉 진실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진실인 지혜의 말씀과 나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반면, 중세 기독교에서 나를 해석하는 기준은 신의 말씀이다. 이것이 고대와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특징이다. 신은 전지전능하기에 이미 내 속을 뻔히 알고 있다. 따라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신에게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사실상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다.
둘째, 자기해석의 대상이 다르다. 고대에서 나는 나의 말과 행동을 해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누구나 보고 들을 수 있는 말과 행동이 해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해석의 대상이 객관적이기 때문에 나의 해석과 다른 사람의 해석을 비교할 수 있다. 반면, 중세에는 말과 행동은 물론, 내면의 생각과 마음까지 해석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자신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자기 안에 사탄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을 대신하는 교황이나 사제가 나의 상태를 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가 나 대신 나를 해석해야 한다.
셋째, 자기해석의 목적이 다르다. 고대에서 나는 격언과 스승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갖는다. 궁극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는 자기완성이 자기 해석의 목적이다. 반면, 중세에서 나는 자기 포기를 자기 해석의 목적으로 삼는다. 결국 나란 존재는 죄인이기 때문에 포기되어야 하고, 오직 신의 은총을 통한 구원만을 자기 해석의 최종 목적으로 삼는다.
푸코의 분석은 내 경험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나는 1970년대 초, 대한민국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만큼 유교적 사고방식이 강했다. 그 때문인지 대학 경쟁의 승패는 곧바로 가문의 영욕으로 이어졌다. 개발 독재국가에서 나고 자란 탓에, 나의 인성과 능력은 조국의 영광을 위해 길러졌고, 이는 곧 가문의 영광이기도 했다.
유교적 사고와 개발 독재 이데올로기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와 비슷한 점이 많다. 아마도 나는 고대의 자기해석 방식으로 나 자신을 이해했을 것이다.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 사회적 규범과 예의범절을 자기해석의 기준으로 삼아, 말과 행동을 심사하고 고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사회에 쓸모 있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경우에는 여기에 기독교식 자기해석까지 더해졌다. 할아버지 때부터 내 아이들까지 교회에 다녔으니까, 형식적으론 4대가 기독교 신자인 셈이다. 나는 교회에 가서 나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목사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합심 기도도 오랜 세월 반복했다. 사춘기 때 끓어오르는 성적 충동 때문에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이 사탄의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도와달라고 울부짖었다. 여전히 죄의 유혹에 빠진 나의 의지와 생각을 모두 포기하고 오직 주님의 자녀로 살고 싶었다.
이렇게 나는 고대 그리스와 중세 기독교의 자기해석 방식을 모두 가지고 있다. 게다가 선생님과 부모님의 사회적 유전자에 박힌 일본 제국주의, 군사독재, 자본독재의 교육 시스템에서 단련되었다. 결론적으로 나에게는 존엄한 인간, 개성 있는 자유인,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나를 해석할 힘도 지식도 없는 것이다.
‘나는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되었는가’에 답하다 보니,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고 규정해 왔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해석하는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푸코의 말대로, 자기라는 것은 역사 속 권력과 지식의 관계망에서 생산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변하지 않는 내가 꼿꼿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각 시대를 주름잡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힘과 앎이 나를 그때그때 빚어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자기(le soi)는 “우리 역사 속에서 구성된 테크놀로지의 역사적 상관물에 다름 아니”기 때문에 푸코에 따르면 우리의 문제는 오히려 이렇게 우리가 자기해석학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킴으로써, 이 테크놀로지를 바꾸는 것임을 아마도 이해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푸코는 전통적인 원칙에 맞춰 자신을 잘 해석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그는 아예 자기해석학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라고 한다. 이러한 해방을 푸코는 ‘우리 자신에 대한 정치’라고 불렀다. 푸코에게 정치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거나 정부의 정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정치는, 일상의 삶과 생각 그리고 '나'라는 인식 자체가 어떤 힘과 앎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여기에 자신을 마냥 버려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푸코는 이를 위해 거부와 호기심 그리고 혁신을 필요조건으로 제시한다.
거부하고 바꾸고 벗어나는 것은 오직 계보학의 작업, 창조하는 작업, 혁신하는 작업, 발명하는 작업을 통해 가능해지는 윤리-정치적 조건들뿐이다. (…) 푸코는 자신이 주장하는 도덕의 중심에 거부와 호기심 그리고 혁신이라는 세 가지 근본 요소를 위치시킨다. 이 세 요소들은 (…) 푸코가 “우리 자신에 대한 정치”라 부르는 것을 특징짓는다.
‘나는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되었는가?’라는 말에는 경쟁에서 밀린 넋두리가 담겨 있다. 쳇바퀴를 돌리고 돌리다 지쳐 쓰러져서야 비로소 삶을 돌아보는 일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 다람쥐가 죽어야 끝나는 현실 따윈 없다. 이 경쟁을 누가, 왜 시작했는지 이제 물어야 할 때다.
그러고 보면, 우리 교실에도 이런 질문을 과감하게 던졌던 사람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전국교직원조합의 회원이었다. 국어를 가르치셨는데, 선생님의 질문은 마음을 움직였다. 서정주가 지은 ‘국화 옆에서’를 다 읽고 나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서정주는 일본 침략자에 자발적으로 협력한 반민족주의자다. 해방 후엔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일제가 몇백 년은 더 있을 줄 알았다, 해방이 그토록 빨리 올 줄은 몰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의 시를 국정교과서에 싣고, 그의 문학적 상상력을 학생들에게 탐구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서정주가 반민족주의자라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밑줄 짝치고 정형적인 해석을 받아 적던 수업 시간에 토론이라니! 그러나 친구들은 곧 민족정신과 문학적 자유를 주제로 토론했다. 당시에 배운 민족주의 역사관 때문이었을 테지만, 대다수는 민족정신 쪽으로 몰렸다. 문학적 자유를 주장하더라도 국정교과서에 실려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수업이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처럼 책상 위로 올라가 전혀 다른 시각을 얻은 것 같았다.
정부는 전교조를 탄압했다. 약 1,500명의 선생님이 해직되었다. 그 숫자에는 국어 선생님도 포함되었다. TV에는 전교조를 빨갱이 집단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나왔다. 부모님도 전교조에 가입한 선생님들을 의심하셨다. 그 선생님이 그럴 분이 아닌데, 말끝을 흐리시면서.
당시 선생님은 아이를 하나 둔 신혼이었다. 오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돌아보니, 당시 선생님의 전교조 가입은 어려운 선택이었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선생님은 교육정책 뒤에 작용하는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밝히고 싸웠다. 선생님은 경쟁교육을 원하지 않았다. 교사로서 아이들이 그렇게 살면 안 된다며 참교육을 외치고 행동했다. 이것이 푸코가 말한 자기에 대한 정치가 아닐까. 권력과 에피스테메가 만든 현실을 거부하고, 호기심을 잃지 않으면서 계속 나를, 나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바꿔나가는 삶. 선생님은 이렇게 사신 것이리라.
‘나는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에는 내 인생 전체가 들어가 있다. 그 덕분에 50대 아저씨인 나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는 국민학생으로, 경쟁하는 고등학생으로, 차별받는 군인으로 변신해 과거를 천천히 검토할 수 있었다. 나의 키와 얼굴만 바뀐 게 아니다. 마음과 생각도 달라졌다. 글쓰기는 자기를 탐색하고 이해하고 검토하게 만든다. 이번에 얻는 나의 문장은 이렇다.
묻지 마 경쟁을 멈추고,
이제 자신에 대한 정치를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