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짱구는 못 말려-그 때, 참 행복했구나

by life barista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구나


최 부장은 얼마 전 둘째 아들과 심하게 다퉜다. 고2라는 녀석이 공부하는 시간보다 유튜브 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본인은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방문을 열어보면 대부분 침대 위에 누워있다. 침대에서 하는 일은 둘 중 하나. 자거나 휴대폰 시청. 웬만하면 잔소리를 안 한다고 자부하던 최 부장도 그날 만은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버럭 짜증과 분노의 화염 방사기를 뿜었다. 그것도 자기 오른손이 아들의 머리를 강타한 직후였다.


"야!!! 이놈의 새끼!!! 초등학교 2학년도 너보단 많이 공부하겠다. 도대체 대학에 갈 거야 말 거야!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거야? 너를 보고 있으면 억장이 무너진다. 내 인생이 한심하고, 서글퍼져."


"아빠, 인생 한심한 게 제 탓이에요? 대학은 가서 뭐하게요? 아빤 뉴스도 안 보세요? 좋은 대학 나와봐야 취직도 못하고 다들 편의점 알바 자리도 못 구해 난리 다잖아요. 저는 대학 안 가요. 그 돈이라도 아끼세요. 저는 그냥 알바 하면서 살 거예요. 그리고 머리를 때리긴 왜 때려요? 저도 내년이면 성인이에요. 머리 좀 때리지 마세요,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막내다. 유달리 몸이 크고 잘 먹었다. 이젠 집에서 키가 제일 크다. 운동을 좋아해 주짓수, 복싱, 검도 모두 유단자다. 최 부장은 자기보다 키도 크고 몸도 좋은 녀석이 벌떡 일어나 씩씩대자 본능적으로 위축되었다. 마치 잡아먹을 듯 불꽃 튀는 눈싸움이 벌어졌다. 둘 다 흥분한 기색이 역력하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팽팽한 긴장감. 그러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최 부장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른 것이다. 방금 전, 자신의 손이 자신의 억제력보다 빨랐듯이, 지금도 이 애매하고 화끈거리는 액체를 주체할 수가 없다.


"그래, 미안하다."


최 부장은 그 말만 남기고 막내 방을 나왔다. 문 닫히는 소리가 마치 마음이 닫히는 것처럼 어두웠다. 이제 품 안에 자식이 아닌 것을, 왜 이리도 탁 놓지 못하는 걸까.


코로나 여파로 영업실적이 말이 아니다. 포장 가능한 신제품을 출시하고, 배달 할인 행사 등 아무리 발버둥 쳐도 외식사업부 매출은 작년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다들 우리 탓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차마 그렇게 말을 할 수 없는 분위기.


코로나 탓이니까 너무 기죽지 말라고, 위에서도 다 아신다고, 이제 곧 백신도 나오고 치료제도 나온다고 하니 힘내자며 회의를 끝냈다.


회의실을 나온 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팀원들 휴대폰이 거의 동시에 울렸다. 알람의 주인공은 어제 확진자가 1,000명을 넘었다는 뉴스 속보였다.


최 부장은 뉴스를 자세히 보지 않는다. 지난달 모 신문사에서 터트린 외식사업부 매각 소식 이후 언론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 뉴스가 완전히 엉터리는 아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3세 경영이 가시화되면서, 외식사업부가 찬밥 신세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코로나라는 명분까지 얻었느니 기성 사실이 된 셈이다. 고참인 최 부장으로선 늘 불안했다. 어제는 일괄 사표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것도 경영본부 동기 입에서 말이다. 담당자인 그의 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올 게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집에도, 회사에도 세상 어디에도 내 편은 없다. 막내와 코로나가 동시에 나를 공격해 올 줄이야. 최 부장은 폐암 경고 사진이 선명한 담뱃갑에서 마지막 까치를 꺼내 물었다. 담뱃불을 붙이고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 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한다. 버스 옆구리엔 언제나 그렇듯 옥외광고물이 박혀 있다.


짱구네...... 짱구??? 짱구는 못 말려 극장판이 개봉하는 모양이다. 짱구 하면 엉덩이 춤이고, 엉덩이 춤하면 막내였는데......


최 부장은 옥외광고판에 붙은 짱구와 액션 가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문득 짱구 아빠 목소리를 담당했던 성우분이 항암 치료 중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짱구 아빠 명언



‘짱구 아빠’를 검색 창에 넣으니, ‘성우 오세홍’, ‘짱구 아빠 이름’, ‘짱구 아빠 명언' 등 연관 검색어가 보인다. 짱구 아빠 명언? 아, 맞다! 그랬다. 아이들 키울 때, 짱구는 못 말려를 보면서, 짱구 아빠 신형만 씨 말씀에 감정이입되어 남몰래 울컥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바로 저거다. 나도 오직 가족만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르는 거다! 이런 가상한 아빠의 마음도 모르고 두 아들들은 "씰룩~ 씰룩~"을 연발하면서 엉덩이를 흔들었다. 덕분에 아빠의 각오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최 부장은 유튜브에서 짱구 아빠 명언을 검색했다. 동영상을 보고 있자니, 방금 내린 커피처럼 추억이 향을 뿜었다. 내친김에 동영상 하단에 깔린 자막을 손글씨로 받아 적었다.


‘회사에서 일하기, 가족 서비스’ 양쪽 모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아버지의 어려운 점이지.


아버지라면 누구나 동감 백배할 대사다. 입꼬리가 올라간다 싶더니 금방 내려왔다.


짱구야, 아빠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건 너와 짱아가 태어났을 때다.

태준아, 서준아, 이 아빠도 마찬가지다. 너희 둘이 나에게 아빠라는 벅찬 이름을 줬다. 그래, 그 이름이 가슴 벅찰 때가 있었다.


짱구 너도 누군가 보호해 줘서 이렇게 클 수 있었던 거야. 아빠도 그렇고.

자기 혼자 힘으로 컸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그만큼 커질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최 부장은 이 장면을 캡처해 막내에게 보내야겠다고 신이 났다가, 0.1초도 안 돼 관뒀다. 누가 누굴 나무랄 처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를 생각하자니 최 부장도 금세 죄인이 되었다. 그렇게 호되게 종아리를 때리신 날, 내가 잠든 척하고 있다는 걸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아버지는 뻘겋게 올라온 살 위에 정성껏 약을 발라 주셨다. 이럴 거면 때리긴 왜 때리냐면서 서러운 마음에 울음이 한 움큼 올라왔지만, 어금니 꽉 물고 삼켰던 기억이 났다. 자기 혼자 힘으로 컸다고 착각하는 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가진 이기적 유전자의 부스러기 같은 게 아닐까. 막내 얼굴과 자기 얼굴이 무척 닮아 보였다.

우린 세계를 지키는 히어로 따위가 아니야.

아이들에게 미래를 살아가게 해주고 싶은 아버지다.


아버지...아, 아버지...

최 부장은 이제 막내와의 일은 까맣게 잊고 말았다. 갑자기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엄동설한 차가운 땅에 홀로 누워 계실 아버지의 육신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 와중에 수의 값이 너무 비싸다고 싸웠던 자기 모습은 왜 또 이렇게 또렷이 기억나는지. 반면, 그 흔한 변명거리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일할 사람은 있어도 대신할 아빠는 없어.


아버진 평생 택시를 모셨다. 교통가족이라며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러다가도 사고라도 나면,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말을 잇지 못하셨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남이 잘못하면 다 꽝 되는 게 운전이라며 아들에게도 안전운전을 신신당부하셨던 아버지. 아버지를 대신할 분은 없었다. 누군가의 빈자리는 빈자리가 생기고 나서야 깨닫는다. 운전대를 놓으신 후, 끼니마다 소주를 드렸던 아버지를 그땐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은 최 부장이 그렇게 되었다. 살아계셔서 지금 내 모습을 보신다면 뭐라 하셨을까. 몸에도 안 좋은 술을 왜 그렇게 마시냐고 걱정하셨겠지. 그때 내가 아버지께, 그리고 지금 아들 녀석들이 내게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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