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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barista Jan 10. 2021

보일러동파

사는게 다 그렇지, 별일 아니다

어제 아침 보일러 동파.
온수가 안 나오는 경우야 흔하지만,
보일러에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는지라 냉골 바닥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다.
양말을 두 켤레 신은게 대책이라면 대책이랄까.

유튜브 고수들 말씀따라
휴즈하고 콘데서 떼서 알아봤다.
들린 곳이 족히 십 여 군데다.
보일러용은 업자들 먹고 살라고
아예 들여놓지도 않는다고
전파사 사장님께서 일러 주신다.

마지막으로 찾은 오래된 전파상.

간판은 흔적만 남았다.
여든 넘어 뵈는 사장님께서
너무 고맙게도
휴즈하고 콘덴서를 테스트 해 주셨다.


이거 문제없네.
사실 보일러 휴즈나 콘덴서, 그렇게 쉽게 나가진 않아.

돌아와 다시 부품을 끼어넣었다.
뺄 때, 휴즈 박스가 깨졌는지
제대로 장착되질 않는다.
눈물이 핑돈다.

유튜브 고수와 동네 전파사 인간문화재 말씀 중 어느 분 의견이 맞는진 모르겠지만,
보일러는 휴즈가 없으니
이젠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
가족들에게 피난을 당부했다.

발품 판 성과도 없이 고드름 길게 흘러내린 보일러를 헤어 드라이기로
하염없이 녹였다.
서글펐다.

추워서 고장난 보일러야 따뜻해지면 다시 나아지겠지.
여유 좀 갖지.
고 좀 춥다고 사방팔방 해결해 줄
만능열쇠 찾아해맨 꼴이 우습기도하고,
소위 전문가란 말에 이리저리 흔들린 것도 바보같다.

따뜻한 방과 온수를 만들어주던
보일러 앞에서
절로 감탄과 감사 예배 중인데,
그래도 춥다.
너무 춥다.

보일러 수리 기사님은 이제 전화를 안 받으신다.
어젠 거의 죽어가는 사람같았다.
설마, 쓰러지신 건 아니겠지.

이상하지만 아예 새 것으로 교체하는 건
내일 된다는 집이 있다.
이번 참에 바꿔야 할 모양이다.

콘데싱 보일러 설치가 의무란다.
정부보조금이 20만원 나온단다.
10년 이상 사용이 조건이다.
모델 번호를 알려주니
엄청 웃는다.

멈출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네요.

보일러에게 감사.
가족들에게 미안.
발가락이 젤 시렵다.


오지랖 본능이 또 작동한다.
길에서 주무시는 분들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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