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시민기자 3번째 기사
산초로 빙의해 쓴 글이 게재 거부되었다.
나름 간파한 거부 이유는 사는 이야기도 기사요, 시민기자도 기자라는 거다.
기자가 쓴 기사에 문학적 풍자라니!
안될 일이다.
그래서 기사처럼 다시 썼더니,
철커덕 게재되었다.
아래는 어제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에 게재된 기사처럼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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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일 실시간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이란을 공습했다. 이어 이란 최고지도자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긴급 자막이 이어지는 동안 국내에서는 삼일절 기념사가 발표되고 있었다.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해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나아가자는 메시지였다.
한쪽에서는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평화와 공영을 말한다. 같은 날, 같은 시간, 전혀 다른 장면이 동시에 펼쳐졌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평화와 민주주의를 먼저 떠올렸어야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않았다.
환호가 곧 민주주의는 아니다
일부 외신은 테헤란 거리에서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전했다. 오랜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과 최근 반정부 시위가 있었던 만큼, 그러한 장면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다.
그러나 한 국가의 체제가 바뀌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수십 년 유지된 권력은 개인 한 사람의 의지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정치·군사·경제 권력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외부의 개입만으로 민주주의가 곧장 뿌리내리기는 어렵다.
민주주의는 환호로 완성되지 않는다. 내부의 갈등과 합의, 긴 시간의 축적을 통해 형성된다. 그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그 과정을 잘 보여준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 4·19 혁명, 군사정권 시기,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을 거쳐 최근 우리가 목격한 비상계엄 사태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는 멈춰있는 유산이 아니라 매 순간 시민의 손으로 지켜내야 하는 현재진행형의 과제이다. 제도는 조금씩 다듬어지고 있지만, 그 제도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시민의 깨어있는 감각이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먼저 생각했나
전쟁 속보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민주주의도, 평화로운 국제 질서도 아니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국제 유가는 급등하지 않을까."
"전쟁이 길어지면 국내 증시는 얼마나 흔들릴까."
"환율은 어떻게 움직일까."
세계 질서의 격변 앞에서 나의 첫 반응은 '주식시장'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시민의 조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실시간 자산 변동 속에서 살아간다. 전쟁은 유가 그래프로 환원되고, 외교 갈등은 환율 변수로 번역된다. 분쟁 지역의 고통은 어느새 포트폴리오의 리스크로 정리된다.
자산의 언어로만 세계를 읽을 때
물론 경제적 파장을 분석하는 일은 필요하다. 국제 분쟁은 실제로 에너지 가격과 금융시장에 영향을 준다. 문제는 그 시선이 전부가 될 때다.
전쟁을 '시장 변수'로만 해석하는 습관이 굳어질수록, 타인의 고통은 숫자로 축소된다. 국제 유가상승은 투자 기회가 되고, 군사 긴장은 특정 산업의 호재로 읽힌다. 인간의 삶과 죽음은 그래프의 변동 폭 뒤로 밀려난다.
나는 그 장면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평화를 말해야 하는 날, 나는 먼저 수익률을 계산하고 있었다. 삼일절은 주권과 존엄을 되새기는 날이다. 민주주의는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고, 시민 각자의 선택과 태도 속에서 지켜진다.
전쟁과 평화가 교차하는 시대에 나는 무엇을 먼저 생각하는가.
세계의 불안 속에서 나는 어떤 언어로 세상을 읽고 있는가.
전쟁 속보 앞에서 주가를 먼저 걱정한 그 순간,
뾰족한 질문은 국제정세가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