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참 빠릅니다. 벌써 글쓰기 수업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읽고 쓰는 시간이 쌓이면서 마음의 결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네요. 예전에는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며 칼날처럼 날카로웠던 마음이, 이제는 “저 사람에겐 저게 참 중요했나 보다”라며 살짝 폭신해지는 걸 느낍니다. 잘 산다는 건, 어쩌면 이렇게 ‘나’라는 좁은 감옥에서 나와 ‘우리’라는 넓은 마당으로 조금씩 옮겨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이번 달 주제는 아주 정석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라는 질문인데요. 함께 읽을 책의 조합을 들으면 머리가 살짝 어지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살과 성적 묘사가 난무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그리고 ‘나를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는 ‘타인의 얼굴’을 말하는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입니다.
‘잘 사는 법’을 묻는데 왜 죽음이 등장하는 걸까요?
사실 이 낯선 조합에는 ‘나 혼자 무사히 사는 법’이 아니라, ‘서로를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라는 절박한 문제의식이 숨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은 우리에게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더 익숙하죠. 제목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소중한 사람들을 계속 잃어버립니다. 하루키는 이 지독한 상실을 “들판의 우물”로 그립니다. 이 우물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발을 헛디디는 순간 소리 없이 사람을 삼켜 버리는 깊고 깊은 어둠입니다.
나오코의 삶은 늘 이 우물 옆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 언니의 자살을 목격했고, 자기 자신과 다름없던 단짝 기즈키의 죽음까지 겪었으니까요.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엉뚱한 말을 내뱉는 ‘말 찾기 병’에 걸립니다. 깊은 상실의 슬픔이 언어를 빼앗아 그 뜻을 망쳐놓는 겁니다.
상실이 너무 크면, 사람은 ‘아프다’는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지요. 마음이 너무 무겁게 가라앉으면 그 어떤 이모티콘으로도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땐, 나를 이해한다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나오코는 세 번의 죽음을 겪습니다. 언니, 기즈키, 그리고 마지막엔 자기 자신까지요. 특히 기즈키와 나오코는 지나칠 정도로 각별했습니다. 세 살 때부터 한 몸처럼 붙어 자란 두 사람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너무 깊이 연결되어 있었죠.
문제는 그들이 서로에게 ‘타자’가 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경계가 아니라 몸의 일부였습니다. 서로를 세상으로 이끌어 줄 출구가 아니라, 서로를 가두는 벽이었던 셈이죠.
여기에 와타나베가 등장합니다. 그는 이 둘 사이의 틈을 만드는 낯선 ‘이방인’이자 ‘타자’였습니다. 나오코는 와타나베에게 말합니다.
“넌 나와 바깥 세계를 이어 주는 유일한 연결 고리야.”
타자는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나를 나의 세계 밖으로 불러냅니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에게 방파제이자 징검다리였지만, 안타깝게도 나오코는 살아있는 와타나베의 손을 잡는 대신 죽은 기즈키의 곁으로 가는 쪽을 선택합니다.
나오코는 죽기 전 이런 말을 남깁니다.
“우리는 세상에 빚을 갚아야만 했을 테니까.”
이 빚은 무엇일까요? 미숙하고 어설픈 나를 믿고 기다려 준 누군가의 시간, 내 뒤틀림을 섣불리 고치려 들지 않고 옆에 있어 준 얼굴들 아닐까요.
잘 산다는 건 상실을 모른 척하거나 완벽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결핍과 상실을 들키더라도 타인과 연결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즈키는 와타나베라는 타자 앞에서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다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자신을 ‘고쳐야 할 고장 난 무엇’으로만 여겼기 때문이죠. 하지만 잘 사는 법이란, 고장 난 채로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우물 옆을 걸어가는 법을 배우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하루키는 어쩔 수 없는 상실과 함께 세상에 진 빚을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혼자 무사히 상실을 피하면서 사는 삶이 아니라, 상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와 함께 걷는 사람의 얼굴을 봐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혹시 내 곁에 있는 누군가가 고통 속에 있다면 그와 함께 머무는 것이 요즘 같은 상실의 시대를 건너가는 유일한 지도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수업에서 제가 찾은 잘 사는데 필요한 문장은 이것입니다.
“혼자였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나의 삶을 지켜준 사람들을 기억하라!”
잘 산다는 건 나의 성공을 전시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 곁의 누군가에게 지금까지 나와 함께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이야말로 잘 사는 것 아닐까요.
혹시 당신도 세상에 진 빚이 있나요. 나의 삶을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해 준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얼굴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그 이름을 불러주세요.
“나는 오늘 __________________의 얼굴을 환하게 맞이하고 싶다.”
빈칸에 들어갈 그 이름이, 지금 당신이 잘살고 있는지 말해주는 가장 정직한 증인일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먼 길을 돌아보고 나서야, 그 얼굴 덕분에 내가 들판의 우물에 빠지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