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달과 6펜스-인생 자체가 예술

by life barista

또 다른 예술의 세계


스트릭랜드는 달나라의 힘을 얻은 후에서야 돈나라의 실체를 알았다. 그리고 달나라에서 살 수밖에 없는 어떤 힘에 묶여 있다. 나아가 그는 달나라의 삶에서 온전히 자신의 삶을 성취하고자 한다. 그러한 삶이 바로 자신의 존재 의미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그는 ”그때까지 자신을 얽매어왔던 굴레를 과감히 깨뜨려 버렸던 것이다.“ 그는 돈나라 사람들이 하는 칭찬이나 인정 따위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젊은 작가가 보기에, 독설을 날리는 비평가들이 득실거리는 그림 시장에서 스트릭랜드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젊은 작가 : 남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 하실 줄 알았는데요.

스트릭랜드 : 당신은 그렇소?

그가 이 두 마디 말에 담았던 그 측량할 수 없는 경멸감을 나는 지금도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측량할 수 없는 경멸감! 달나라 사람들은 돈나라 사람들을 경멸한다. 그리고 돈나라 사람들은 그러한 경멸에 대해 딱히 대꾸할 말도 없다. 손 차장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돈나라 사람들도 할 말은 있지 않은가.


양심에 따라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다한 사람들이 왜 경멸의 대상이란 말인가. 우리 모두는 단지 태어났을 뿐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태어남을 당했을 뿐이다. 마치 교통사고처럼. 태어나 보니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워야 할 걸 배웠다. 한국말, 한글, 부모님께 효도, 어른들께 공손, 나라에 충성, 우리의 소원은 통일, 선진조국 창조 그리고 정의 사회 구현 등등.



그렇게 배웠고, 옛날부터 정해져 있는 길을 따라 살았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무사히 제대했다. 조상님 음덕으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취업도 했다. 우주가 도와 결혼했고, 운명의 신에 의해 아이들을 낳았다. 그 아이는 다시 나와 같은 대사를 읊조리게 될 것이다. 나는 태어남을 당했을 뿐이다.


사회계약설에 따르면, 우리와 국가는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기로 계약했다. 그래서 국가에 주어야 하는 것, 사회가 요구하는 것, 가정이 바라는 것을 해 왔다. 왜 그것이 경멸을 받아야 하는지 손 차장은 불만이 가득했다. 이제와 생각하니 자신은 받을 걸 못 받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자신 역시 젊은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스트릭랜드에게 대들만한 힘이 나지 않았다.


손 차장은 그 힘을 『달과 6펜스』의 ‘브뤼노 선장’에서 찾았다. 그의 말은 운석처럼 마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나도 꿈을 가진다는 게 뭔지를 아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내게도 꿈이 있어요.

나는 나름대로는 예술가죠.


브뤼노 선장은 스트릭랜드에게 한없는 동정을 느꼈던 사람이다. 그는 훌륭한 선장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가장이다. 그는 스트릭랜드처럼 가족을 버리지 않았다. 브뤼노 선장은 가족과 함께 꿈을 꿨다. 사실 그는 크게 실패한 경험이 있다. 그렇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아무도 살지 않는 작은 섬을 하나 얻었다. 무인도가 다 그렇듯 쓸모있는 땅은 없었다. 밤낮없이 땅을 개간했다. 집도 손수 지었다. 집을 지은 손은 가족 모두의 손이었다. 그렇게 가꾼 섬은 단순한 섬이 아니었다. 예술 작품이었다.


내게도 그 친구를 움직인 그런 욕망이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 친구가 그걸 그림으로 표현했다면,

나는 인생으로 표현했을 뿐이지요.


자기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활동이니까, 이것은 결국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껏 손 차장에겐 한 번도 없었던 바람이다. 손 차장이 꾼 꿈들은 호주머니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브뤼노 선장은 자기 삶 전체를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언어로 또박또박 달나라에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손 차장은 어떤 힘이 느껴졌다.

브뤼노 선장과 만날 당시 스트릭랜드는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할 즈음이다. 브뤼노 역시 그의 그림에서 알 수 없는 원시적 아름다움과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뤼노 선장은 스트릭랜드에게 주눅들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게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면의 힘을 느낀 사람이 바로 달나라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누가 뭘 하던 상관하지 않는다. 우주에 단 하나뿐인 자기 삶을 아름답게 꾸민다. 스트릭랜드는 아름다움을 혼자서 그림으로 그렸고, 브뤼노 선장은 아름다움을 가족과 함께 인생에 그렸을 따름이다.


난 아무것도 없던 데서 뭔가를 만들어냈어요. 나도 아름다움을 만들어낸 셈이죠.

정말이지, 선생은 모를 겁니다.


손 차장은 브뤼노의 삶에 깊은 공감과 존경을 느꼈다. 손 차장이 보기에 브뤼노의 삶에는 달나라와 돈나라가 둘로 갈라져 있지 않았다. 두 나라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화해되고 조화되었다. 그래서 더욱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가족과 자신의 꿈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은 가족 그리고 이웃들과 함께 만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스트릭랜드의 그림이 고독한 단독자의 작품이라면, 브뤼노의 섬은 화목한 협력자의 작품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부채의식을 갖는다. 그렇지만 나에게 뭔가 빚지고 있다는 기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는 커피잔처럼 다른 것들과 분리된 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와 장소 그리고 주변 환경과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질 때마다, 나는 늘 새롭게 조율된다. 마치 악기처럼 말이다. 나만의 고유한 소리도 좋지만, 가족과 이웃 그리고 우주와 함께 만들어내는 화음에 귀 기울이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순간마다 다시 창조되는 나에게 빚지지 않고 사는 비결이다. 오롯이 나로 살면서, 늘 나를 넘어서야 행복을 느끼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손 차장은 이렇게 정리한 발제문을 독서모임 주최 측에 보냈다. 이메일을 발송한 후 자신도 모르게 전자 기타로 눈길이 옮겨 갔다. 전자 기타는 독주할 때도 매력 있지만, 드럼과 피아노 그리고 다른 전자 기타와 협주할 때 역시 자기만의 매력을 발산한다. 손 차장은 자기 자신이 전자 기타와 닮았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오래간만에 옛 그룹사운드 멤머들의 연락처를 휴대폰에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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