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달과 6펜스-양심은 기계음이었다

by life barista

꼭 그렇게 말할 건 아니구

손 차장은 자신도 모르게 『달과 6펜스』의 주인공인 스트릭랜드 편을 들고 말았다. 아내도 질세라 소리를 높였다.


”그럼, 당신은 자기 꿈을 이루겠다고 아내와 자식까지 내팽개친 게 잘했다는 거야?“


손 차장의 얼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목소리만은 차분했다.


”그런 엄청난 결정을 하려면, 제정신은 아니었을 것 같아. 아마 자신도 어쩔 수 없었던 엄청난 힘이 작용한 건 아

닐까? 책에 이런 내용이 있어. 내가 읽어볼게.


‘정말이지 그는 악마에게라도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았다. 악마가 느닷없이 달려들어 그를 갈가리 찢어놓을 것만 같았다.’


악마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사악하지만 어쩔 수 없는 뭔가가 있었나 봐.“


악마라는 단어에 아내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개새끼나 악마나 나쁘다는 점에선 같았기에 받아들이기 쉬웠던 모양이다.


손 차장은 아무렇게나 처박아 놓은 전자 기타를 좀 더 안전하게 두지 못한 것이 못내 불안했다. 기타를 보면 자신 역시 본능적으로 흥분했기 때문이다. 그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피가 데워지고 정열적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지금까지 그런 모습을 아내에게 들키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이 책은 치명적으로 위험한 책이다.

손 차장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치명적인 위험만큼 사람을 흥분시키는 것도 없다는 사실도 동시에 깨달았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와가 선악과를 왜 따 먹었겠는가. 그것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했을 뿐만 아니라, 치명적으로 위험했기 때문이다. 손 차장은 밤이 하얗게 밝아오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어 나갔다.




달나라와 돈나라


책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있었다. 소설 이름 그대로, 하나는 달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6펜스의 나라, 즉 돈나라였다. 달나라는 예를 들면 이런 나라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잘하고 못하고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기 존재의 명령이다. 그 말은 그동안 증권거래소에서 일했던 삶은 존재의 명령을 위반한 삶이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이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죽을 것이 분명했다. 존재의 명령을 거역한 죄인으로 사는 것은 달나라 사람들에겐 죽음과 같은 것이다. 이판사판이다.

누구 눈치를 볼 상황이 전혀 아닌 것이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가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의 주변에 대해 그처럼 철저히 무관심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그림에 미쳐 있었다.


그는 자신이 찾는 미지의 그것을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망설임 없이 대상을 단순화하고 뒤틀었다. 사실이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와는 관계없는 무수한 사실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만을 찾았다.


이렇게 사는 건 너무 이기적이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만 찾아 사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이기적으로 사는 건 초등학교 때부터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배웠다. 양심이 이기적 인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소설에는 양심에 대해 길지만 의미있는 내용이 있다. 손 차장은 읽는 사람마다 달리 해석될 수 있더라도 긴 호흡으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따라가 보자. 작중 화자인 젊은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양심이란 인간 공동체가 자기 보존을 위해 진화시켜 온 규칙을 개인 안에서 지키는 마음속의 파수꾼이라고 본다. 양심은 우리가 공동체의 법을 깨뜨리지 않도록 감시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경찰관이다. 그것은 자아의 성채 한가운데 숨어 있는 스파이다.


여기까진 큰 무리 없이 이해가 되었다. 양심이 공동체를 위한 파수꾼, 경찰관, 스파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스파이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걸까?

젊은 작가는 말을 이어갔다.

남의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하고, 남의 비난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여 우리는 스스로 적을 문 안에 들여놓은 셈이다.


맙소사..... 인간은 결국 혼자 살면서도 같이 사는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걸까? 자기 만의 개성과 삶의 의미를 찾지만, 그것마저도 남의 칭찬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되는 걸까? 남의 칭찬은 꿀처럼 달고, 남의 비난은 독약처럼 써서 양심이라는 정수기가 필요했던 것일까? 단면 삼키고 쓰면 뱉기 위한 필터로서의 양심. 그래서 양심은 나만의 존재 의미를 찾는 달나라 사람들에겐, 스파이일 수밖에 없는가보다.



양심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앞에 두라고 강요한다. 그것이야말로 개인을 전체 집단에 묶어두는 단단한 사슬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 제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받아들인 집단의 이익을 따르게 됨으로써, 주인에게 매인 노예가 되는 것이다.


개새끼라는 냉정한 평가와 소설에서 말한 악마의 힘이란 결국 양심이 자기 역할을 못한 것을 염두해 둔 말이다. 양심에 따라 살지 못한 인간은 인간도 아니요, 그렇게 만드는 건 악마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단 의미다. 그렇다면 양심에 따라 살면 그런 인간이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젊은 작가는 이러한 양심이 종국엔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주인으로 섬기도록 자기 자신을 노예로 만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당연하게 이런 질문이 생긴다. 나는 내면의 나의 목소리를 따라야 할까, 아니면 양심의 목소리를 따라야 할까? 우리는 이렇게 당연한 것조차 왜 묻지 못하면서 살았을까?

왕이 매로 어깨를 때릴 때마다 아양을 떠는 신하처럼 자신의 민감한 양심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양심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온갖 독설을 퍼붓는다. 왜냐하면 사회의 일원이 된 사람은 그런 사람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양심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따르는 사람 앞에선 무력하단다! 그래서 아예 자기 목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온갖 독설을 퍼붓는다고 한다. 손 차장은 학교에서 배웠던 국민윤리라는 교과목이 생각나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냥 평범한 윤리가 아니라, 국민윤리라니! 국민윤리 안에 한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나’다움이란 금지된 것과 다름없었다. 선진조국 창조를 위한 밑거름에 개성이니 창조성이니 예술적 정열이니 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했다. 윤리라는 게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거구나. 그 전에는 전혀 몰랐다.

손 차장은 국가가 거대한 기계처럼 느껴졌다. 윙윙 거리는 굉음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현역으로 입대해 병장 만기 제대한 것이 갑자기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힘 있고 돈 있는 집안에 병역 면제자가 많은 지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손 차장은 자신이 너무 왜소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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