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 후 나른한 오후. 전화가 신경질을 내며 울렸다. 인사본부장이었다. 잠깐 자기 방으로 오란다. 딱 3년이라고 했다. 3년은 베트남에 새로 생기는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 건설과 시범 운행에 필요한 기간이었다. 회사가 제시한 해외주재원의 연봉은 지금 받는 금액의 두 배가 넘었다. 귀국하면 회사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을 외국인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급하게 기울어졌다. 많은 돈과 밝은 미래 그리고 아이들 영어교육까지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섬광처럼 짧게 빛났다.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이번 베트남 프로젝트가 잘되면,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같은 공장을 세울 계획인데, 아무래도 1기 베트남 맴머들이 경험이 있으니 계속 선발대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잘하면 동남아시아에서 정년 퇴직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에 이팀장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아이들이 크면 대학입시 때문에 가족들은 귀국해야 하고, 결국 혼자 남은 아빠는 기러기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든 중년 남자가 혼자 외국에서 사는 게 말처럼 쉽지 않고, 실제 이혼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아내는 반대했다. 우선 아이들 걱정이 컸다. 첫째가 초등학교 5학년인데, 3년이면 중학교 진학과 겹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첫째와 다섯 살 터울인 둘째는 이제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응석받이 막내다. 요 어린 것이 덥고 습한 베트남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아내 자신도 문제라고 했다. 남편은 회사에 가면 지금처럼 없는 사람 취급해야 한다. 게다가 해외 공장 건설이 어디 쉬운 일인가? 밤낮없이 바쁠 것이다. 아무래도 아이들 교육이며 살림살이는 한국에서처럼 독박을 써야 하는데, 말도 안 통하는 낯선 이국땅에서, 친정 엄마의 도움 없이 혼자 잘해나갈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날만 했다.
막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단절된 경력을 다시 이어나갈까 이런저런 자격증 공부와 진학 등을 고민해왔던 아내로서는 갑작스런 해외주재원 생활에 박수칠 입장이 아니었다. 마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어두컴컴한 산속으로 아이 둘과 함께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 팀장은 동남아시아 이곳저곳을 떠돌게 될지도 모른다는 재수없는 소문은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7년이 지났다. 이 팀장은 여전히 베트남에 있다. 3년이 지나 귀국할 시점에 과장에서 팀장으로 승진했다. 신임 팀장이 공장 현지화가 완료될 때까지 잔류해야 하는데, 이 과장이 아니면 누가 하겠냐며 최적임자라고 잔뜩 추켜세웠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함께 왔던 1기는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그보다 3년 늦게 베트남에 왔던 2기도 작년 말에 돌아갔다. 큰 애는 고3이 되었고, 맨날 징징대던 막내도 중학생이 되었다. 지난 여름 방학에 왔던 아내의 말이 자꾸 걸린다.
"아빠 없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이제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있는 생활을 어색해 해."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본사 인사팀장에게 귀국을 요청했다. 인사팀장은 이팀장이 아끼는 입사 한 해 후배다. 인사팀장은 난처해하면서도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다.
"형님, 서운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금 돌아오시면 바로 명퇴 대상입니다. 이제 현지 법인장이 바로 코 앞인데, 저 같으면 조금 더 참겠습니다."
안 그래도 회사 상황이 좋지 않은 걸 형도 잘 알지 않느냐,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아예 문을 닫는 게 나을 지경이다, 말만 명예퇴직이지 과거와 비교하면 불명예 퇴직과 다름 없다 등등 스트레스 풀 패키지 소식을 그는 끝없이 덧붙였으나, 그의 진심은 짧고 분명했다.
‘버텨라, 그게 최선이다.’
순간 이 팀장은 불같은 배신감에 휩싸였다. 3년만 참으면 승승장구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2배가 넘는 7년을 견뎌냈는데 명퇴 대상이라니, 당연한 감정이었다. 조금 더 참아라? 그러면 법인장이 된다? 그걸 지금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날로 심해지는 우울증은 어쩌란 말인가? 아빠 없는 시간이 더 좋다는 아이들에게 뭐라 말하란 말인가? 이제 서운하다고 말할 힘조차 없는 이 팀장의 마음은 여름 땡볕 아래 아이스크림처럼 흉하게 흘러내렸다.
그러나 알다가도 모르는 게 사람 마음이다. 마음 한구석에선, 달콤한 속삭임도 쉬지 않고 들려왔다. 현지 법인장은 임원이다. 임원이 된다는 건 군대로 치면 계급장에 별을 다는 장군님이 되는 것이다. 모든 월급쟁이들의 꿈 아니던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 많았나? 이제 와 내가 남편이다, 아버지다 큰소리치면서 돌아간다 해도 과연 가족들이 따뜻하게 맞아줄까? 인사팀장 말대로 조금 더 버텨서 개선장군이 되는 게 남는 장사 아닐까? 그런데 어깨에 별을 달면, 내 삶도 반짝반짝 빛나게 되는 걸까? 반짝이는 내 얼굴 뒤로 가족들의 표정은 더 깊은 밤이 되었다. 돌아가기엔 너무 늦지 않았나.
이 팀장이 아무도 모르게 항우울제를 먹은 지는 3년이 조금 넘었다. 길어지는 타국살이와 꺾인 나이 중년은 마음부터 갉아먹었다. 세고 재고 따지는 머리도 무뎌지고, 모름지기 세상살이란 칼날만으로는 이겨내지 못하는 법이란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칼날을 넉넉히 품어주는 칼집도 있어야 한다. 넉넉하게 안아주는 가슴과 조건 없이 들어주는 귀가 날카로운 머리보다 사람을 더 사람답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가슴과 귀를 가진 존재가 이 팀장에게는 가족이었다. 그는 그러한 가족과 너무 멀리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다. 가족 없이 견뎌야 하는 사회생활은 꽉 찬 사람을 텅 빈 양철 인간으로 만든다. 약은 팽이의 외다리가 되어 마음을 집요하게 후벼팠다.
이팀장은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소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철학이 자신의 영혼을 쉬게 했다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에 매진했던 회사 선배가 보낸 것이었다. 영혼이 쉰다. 그 말에 끌려 그는 노끈 매듭을 풀었다. 여러 책 중에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