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인간의 조건-사유는 생계 앞에서 멈춘다

by life barista

인간의 조건이란 뭘까?


인간의 조건?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일까? 이팀장은 책을 펼쳐 이리저리 넘겨보았다. 그는 한나 아렌트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은 적이 있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가스실에서 수백만 명의 유태인들을 학살한 장본인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특파원 자격으로 아이히만의 재판을 직접 참관했다. 그녀가 경악했던 것은 아이히만이 옆집 아저씨처럼 너무나도 평범했다는 사실이었다. 수백만 명을 죽인 사람의 머리엔 악마의 뿔이 없었다. 그의 엉덩이에는 악마의 꼬리도 없었다.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왜소한 개인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악의 평범성에 놀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 비극의 원인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한나 아렌트는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라고 말한다. 이팀장은 이 말에 적지 않게 놀랐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시키는 대로 일해 왔던 그는, 사실 이 일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밥벌이는 신성하다, 목구멍이 하나님이다라는 신념으로 묵묵히 시키는 대로 살아왔던 이팀장에게 한나 아렌트는 묻는다.


”우리가 활동할 때 우리가 진정 행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진짜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이러한 질문의 결여가 악마성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한나 아렌트의 일침이 너무 의외여서 이팀장은 살짝 어지럽기까지 했다.


이러한 경험 때문일까? 『인간의 조건』을 살펴보는 이팀장의 눈은 평소와 달리 반짝였다. 한나 아렌트는 과학과 기술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전체주의적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전체주의적 경향은 통제되지 않는 부분을 통제되게끔 억지로 묶고 끌어당긴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신념은 불가능한 영역까지 가능한 것처럼 보이도록 위장한다. 위장에는 거짓과 술수, 강제에는 폭력과 위력이 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현대 기술시대의 근본악은 과학과 기술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전체주의적 요인에 숨어 있다고 그녀는 보았다.


이팀장이 베트남에 온 이유는 스마트 팩토리를 건설하기 위해서다. 스마트 팩토리는 고객이 언제 어디서 주문을 하던지 주문 즉시 작업이 시작되도록 설계된 공장을 말한다. 모든 자재와 설비는 시스템으로 실시간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라곤 시스템을 점검하는 사람뿐이다. 실제 재료를 붓고 빚어 디자인에 따라 제품을 만드는 것은 로봇팔이 한다. 포장과 물류까지 사람의 노동이 끼어들 틈은 전혀 없다. 사람이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스마트 팩토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고객이 언제, 어디서, 어떤 색깔과 모양으로 주문을 하든 주문한 그대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스마트 팩토리에는 깔려 있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전체주의적 경향이 그대로 배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팀장은 현실을 잘 알고 있다. 모든 것을 통제한다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 시스템은 자신을 만든 인간을 빼다 박았다. 인간은 수많은 실패를 통해 조금씩 배워 나간다. 시스템 역시 고장과 오류를 먹으면서 점차 나아질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완벽한 인간이 없듯이, 처음부터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노동은 생계만을 위한 활동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이러한 과학과 기술에 대한 과잉 믿음은 인간의 조건의 핵심인 ‘지구’를 거대한 실험실로 만들어 버린다. 인간은 실험도구나 실험대상이 된다. 실험이란 자연스런 상태를 용납하지 않는다. 가설에 맞는 조건을 설정해 놓고 끊임없이 조정하고 수정해서 동일한 결과값이 나오도록 조작한다. 과학과 기술의 시대는 인간의 노동을 끊임없는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으로 노동, 작업, 행위를 제시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나 아렌트에게 노동이란 생계만을 위한 활동을 의미한다. 생계는 먹고사는 문제다.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어떤 활동도 할 수 없다. 늘 생계를 걱정하면서 여기에 목을 맨다. 생계가 불안할 경우 인간은 생계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거나 왜곡한다. 고대 그리스 등에서 노예에게 정치적 투표권을 주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계만을 위해 사는 노예에게 보다 높은 정신적 가치를 목표로 하는 정치적 결정을 맡길 수 있을까? 전체 국민에게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나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노예에게 더 크기 때문이다.



이팀장은 이에 대한 자신있는 반론이 생각나지 않았다. 생계만을 위한 활동을 노동이라고 할 때, 자신이 지금껏 회사원으로 한 활동 전체는 노동에서 단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고 이팀장은 생각했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거대한 명분 아래서 가족과의 친밀한 시간을 수년간 포기했다. 직원들과의 이야기도 업무와 관련된 것으로 한정되었다. 대주주의 친인척이 낙하산으로 왔을 때도 참았다. 낙하산들은 전문성이 전혀 없었지만, 이팀장은 이에 대해 침묵했고, 오히려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을 검토한다고 하지만, 결국 내 호주머니 불려줄 사람, 내 세금 깎아줄 사람, 내 집값 올려줄 사람을 고르고 골랐다. 보다 나은 나라, 나라다운 나라를 위해 내가 가질 것을 내놓을 마음은 전혀 없었다. 이걸 합리적인 시민이라고 해야 할지, 이기적인 돈의 노예라고 해야 할지 주저했다. 이팀장에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은, 진인사대생계(盡人事待生計)였다. 생계보다 더 센 명분을 그는 갖고 있지 않았다.



사유는 생계 앞에서 멈춘다


한나 아렌트는 ‘사회’가 출현하면서, 사회란 영역 안에 가족으로 대표되는 사적 영역과 정치로 대표되는 공적 영역이 애매하게 뒤섞인 것을 날카롭게 분석해 냈다. 아주 오랜 기간동안 사적 영역은 가부장의 권위와 노예제도를 기반으로 먹고사는 것을 해결해 왔다. 반면, 공적 영역은 토론과 설득을 통해 인간을 보다 자유롭게 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과 기능을 그 중심에 두었다. 그러나 근대의 출현과 함께 나타난 사회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혼재되어 결국 경제문제를 공동체의 최우선 과제로 부각시켰다. 이로 인해 사회에서는 가부장적인 권위와 노예제도가 함께 작동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사회의 구성원들은 경제문제를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로 합의했고, 국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대한 유기체로 보았다. 사회 안에서 인간은 더이상 자유롭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주도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권위에 순응하고 단지 살기 위해 서로 의존해야 하는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팀장은 끊임없는 생산의 자동화 과정이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을 세계와 이웃으로부터 소외시킨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에 무릎을 쳤다. 스마트 팩토리라는 거대한 자동화 공장은 이 팀장을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생계를 염려하는 노동자로 만들었다. 주문과 생산이 실시간으로 연결된다는 꿈은 어떤 사람에게는 항상 실시간으로 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베트남의 자연과 문화를 마음껏 누리지 못했다. 프로그램 오류 알람은 스마트 워치를 통해 감전된 것처럼 온몸을 울렸다. 기후변화나 인권 등 다른 가치를 지닌 문제에 대해서는 심도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저 먹고 사는 문제를 가장 높은 곳에 두었다. 먹고 사는 문제는 다른 문제들을 가르치고 얼마나 잘 해결됐는지 순위를 매겼다. 짐짓 조금이라도 깊은 사유가 시작되면, 배부른 소리한다고 핀잔을 주었다. 사유는 생계 앞에서 군말 없이 멈추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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