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ife barista
Feb 09. 2021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사연이 짠했다.
마흔 후반에서 쉰 초반으로 보이는
퉁퉁하지만 가엾게 늙은
두 아저씨의 지하철 퇴근길 대화다.
마침 한 사람이 내 바로 옆자리를 비집고 앉았다. 패팅을 입은 터라
안 그래도 좁은 자리에 낀 어깨들이 터질듯 부풀어 올랐다.
"형, 작년 겨울은 그래도 잘 넘어갔어, 안 그래? 그런데 올해는 너무 춥네.
형도 알다시피 난 작년에
처음 외근 돌았잖아.
하루는 엄마가 부르시더니 춥진 않냐고 하시더라구.
그 길로 백화점으로 데려가시더니
엄청 비싼 패팅을 사 주시는 거야."
"아, 이게 그거구나."
앉아 있던 사람이 서있는 사람의 옷을 이리저리 살피고 만져본다.
"야아, 딱 봐도 좋아 보이네.
사실, 나도 이 패딩 여동생이 사 준거야."
하며 자기 옷을 손바닥으로 곱게 쓰담는다.
"마누라는 내가 추운데서 일하는지
더운데서 일하는지 통 관심이 없더라고."
앉아 있는 아저씨의 말끝이
저렇게 축처진 채 사라지는게 아쉬웠는지
서 있던 남자가 제때 맞짱구를 친다.
"맞아, 형. 우리 집사람도 마찬가지야.
좀 너무한다 싶더라고.
돈은 엄마 한푼 안 드리고 다 집에 갖다 주는데. 참 이상한 노릇이지."
이러더니 뭐가 보였는지 다급하게
형님에게 주의를 준다.
"형, 가만히 있어봐봐!"
큰일난 줄 알았다.
서 있던 사람은 보기 흉하다며
앉아 있는 선배의 머리에서 삐져나온
흰 머리를 뽑았다.
형님되는 아저씨는 가만히 있을 땐 언제고
"야~ 뽑지마, 안 그래도 머리숱이 없어 큰일인데."
라며 영 어색한 투정을 부린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살가웠지만,
난 눈곱만큼도 부럽지 않았다.
둘은 각자의 아내를 옆에 두고서도
서로를 그리워할 것 같았다.
궁금하진 않겠지만
굳이 한 마디 하자면,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패팅은
아내가 사 준 거다.
백화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