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의 탄생
유과장은 경력단절이라는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뛰어넘었다. 대학 때는 남학생들을 줄줄 달고 다니는 퀸카였다. 대기업에 단번에 철커덕 합격했다. 팀에서 성과평가도 가장 높았다. 뛰어난 외국어 실력에 좌중을 휘어잡는 프리젠테이션 실력까지 어느 한 군데 흠잡을 곳이 없었다. 장래 총망받는 인재라는 수식어가 필요한 단 사람을 뽑으라고 하면 직원들은 주저 없이 유과장을 추천했다.
그러나 유과장도 그놈의 사랑에 발목을 잡혔다. 아홉 수에 걸리면 안 된다고 백일 불공을 드린 어머니 성화에 스물여덟 꽃다운 나이, 중매를 봤다. 불교의 인연인지 기독교의 예정인지 몰라도, 중매 상대방은 영화배우 열 받게 하는 눈부신 얼굴에, 모델 울고 갈 훤칠한 몸매, 게다가 부자집 외동 아들-이게 함정-이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이런 대박 조건엔 내분비 호르몬까지 다량 분사돼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 법이다. 여기에 가족, 친구, 친척들이 호들갑스럽게 입방아까지 찧게되면 영락없는 천생연분이 탄생한다. 천하의 유과장도 천생연분을 만난 지 3개월 만에 청첩장을 돌렸다.
결혼한 다음 해 큰딸이, 또 그 다음 해엔 작은딸이 태어났다. 자기를 꼭 닮은 두 아이를 보면서 유과장은 너무나 행복했다. 육아휴직을 연거푸 냈다. 회사에선 눈치가 살벌했다. 출산휴가 90일에다 유급 육아휴직 1년을 각각 두 번 사용했으니까, 모두 합쳐 2년 6개월이었다. 회사 최초라나 뭐라나 이상한 말이 들려왔다. 법에 있는 권리를 회사에서 내가 최초로 사용했다는 뒷담화가 부러움인지 욕인지 헷갈렸다.
유과장이 뛰어난 인재란 사실은 여전히 유효했다. 유과장의 휴가 전후로 보고서 수준이 달라졌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렇지만 2년 6개월의 기간은 두 아이를 키우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회사 동료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밀리는 데는 충분했다. 결국 유과장은 남들 다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때려치웠다. 아이 둘을 예쁘고 바르게 키우자는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런 엄마 욕심을 부렸다. 대기업을 부러워하던 사람들 중 엄마 욕심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육아와 가사 모두 유과장이 독박을 썼다. 남편도 남편 나름 뭔가를 했지만, 늘 도와주는 컨셉이었다. 부자집 외동아들은 정말 손이 많이 갔다. 일을 벌리고 키웠다.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시켜야 했다. 앓느니 죽지란 말을 이때 참교육 받았다.
두 딸 모두 어엿한 여고생이 된 해, 유과장은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일을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자기소개서를 50곳 넣고 모두 떨어지자 청년 취업난을 실감했다. 90번쯤 떨어지자 경단녀라는 현실에 몸서리쳤다. 처음엔 대기업에서 쌓은 경력이 아깝다, 애들 학원비라도 보태야겠다, 이제 나만의 일과 정기적인 돈벌이가 필요하다, 뭐 대충 뻔한 명분로 버텼지만, 100번째 취업 실패는 얼마남지 않은 자존감의 싹을 싹뚝 잘랐다. 우울하고 비참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침묵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남편이 잔뜩 눈치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나만의 서재를 갖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 박사논문도 마무리 짓고, 노후 대비로 책도 좀 쓰고 하려면 아무래도 방해 없는 조용한 서재가......"
"뭐라고?"
반쯤 조롱대고 반쯤 비난하는 유과장의 반응이 남편의 말허리를 두동강 냈다. 몇년 만 젊었다면 말허리가 아니라, 진짜 허리를 그렇게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곤 유과장 자신도 모르게 소릴 질렀다.
"나만의 서재 같은 소리 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