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자기만의 방-주디스는 살아있다

by life barista

숙모님의 유산


이렇게 어려운 현실 속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어떻게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그녀는 "숙모님의 유산은 내게 하늘의 베일을 벗겨주었고",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것은 사실이었다고 고백한다. 숙모님께서 자신에게 유산을 남겨 주신 것이다. 남성이 시와 소설을 잘 쓸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이 그들에게만 부여한 천재성 때문만이 아니라, 물질적 환경이 주는 안정감도 그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을 숙모님의 유산은 그녀에게 알려 주었다.


경제적 독립은 한 인간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키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음식과 집, 의복은 이제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력과 노동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나게 됩니다. 나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요. 또 누구에게도 아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물질적으로 종속되지 않은 생활을 1~2년쯤 하자 가장 커다란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바로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는 자유"가 생긴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사유의 자유를 솔직하게 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가장 굴욕적인 것으로 여긴 것은 가치를 측정하는 사람들의 규정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숙모님의 유산은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 그것만이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려 주었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지요. 그리고 여성은 그저 이백 년 동안이 아니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습니다. (…)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유과장은 다시 일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남편 월급에 감사한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은근히 자존심도 상하고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이 둘을 낳고 키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 집안의 일원으로서 자격이 없지 않나 우울한 생각이 들곤 했다. 시집 식구들에게 당연한 권리도 자신있게 주장하지 못하고, 친정 부모님껜 작은 것조차 흔쾌히 드릴 수 없었던 건 아마도 자신을 가난한 사람,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종속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마음 자세에서 어떻게 사람과 사물을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이건 남편과의 사이가 좋고 나쁨을 떠나, 한 인간이 자기 삶을 당당하게 살 수 있느냐와 맞닿아 있는 근본적인 문제였다.



리얼리티 쓰기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 바랍니다."


‘새로운 회사와 업무에 대해 마냥 두려워할 일이 아니구나. 과거에 일했던 경험과 현재 일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일기를 써 볼까. 무엇보다 그 일을 하면서 내 감정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내 태도와 행동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기록하고 싶다. 이건 새로 태어난 나를 위한 육아(育我)일기, 즉 나를 낳고 키우는 매일의 기록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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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소소하고 개인적인 것도 글이 될까 주저하고 있었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권유가 큰 힘이 되었다. 유과장은 설레었다.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기를 권할 때, 나는 여러분이 리얼리티에 직면하여 활기 넘치는 삶을 영위하라고 조언하는 겁니다."


리얼리티에 직면하라! 편견과 차별 등 고정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내 몸과 마음이 생동감 넘치게 반응하는 현실과 직접 대면할 때 삶에 활기가 넘친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울렁찬 목소리가 유과장을 깨웠다. 리얼리티와 대면한 일상들을 기록하는 일은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과장은 거실을 서재로 만들자고 남편에게 제안했다. 제일 먼저 TV를 버렸다. 방송국에서 만든 리얼리티 쇼는 그만 보고, 내가 주인공인 진짜 리얼리티와 맞서기 위해서다. 쇼는 이제 충분히 봤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대로,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다.


당연한 다음 차례는 TV를 보기 위해 거실에 퍼질러 있는 소파를 치우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거실이 넓었다. 큰 책상을 놓을 수 있었다. 노트북도 이참에 새로 장만하고, 와이파이도 팡팡하게 업그레이드 했다. 시간을 정해서 안방과 거실을 각자의 서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안방도 정리했다.



주디스는 살아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셰익스피어의 누이, 주디스가 아직 살아있다고 한다.


"이제 나의 신념은 글 한 줄 쓰지 못한 채 교차로 묻힌 이 시인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여러분 속에 그리고 내 속에, 또 오늘 밤 설거지하고 아이들을 재우느라 이곳에 오지 못한 많은 여성들 속에 살아있습니다. 그녀는 살아있지요. 위대한 시인은 죽지 않으니까요. 그들은 계속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우리 속으로 걸어 들어와 육체를 갖게 될 기회를 필요로 할 뿐입니다."


이제 위대한 시인은 유과장의 육체를 걸치게 되었다. 유과장은 이 시인의 정신이 두 딸의 몸을 통해서도 되살아나길 바란다.


"꼭 읽어봤으면 좋겠어^^"


메모지가 붙여진 『자기만의 방』은 이제 두 딸의 책상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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