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모비딕-자본주의의 바다

by life barista

자본주의의 바다


박대표도 회사원이었다. 자기가 한 일은 100인데 돌아오는 몫은 1이라고 생각해 그만두었다. 도대체 내가 만든 99는 누가 가져갔을까? 내가 회사를 차리면 나머지 99도 내 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온다고 철석같이 믿고 자영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대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했다. 노트와 필기구를 팔았다. 복사도 하고, 한쪽엔 스낵과 음료도 갖다 놓았다. 나름 종합마트 분위기를 풍겼다. 장사는 잘되지 않았다. 요즘 대학생들은 노트북이나 테블릿으로 공부하고, 필기내용이나 시험 족보는 파일로 주고 받는다.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닌가 불안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박대표처럼 사회 경험이 절대 부족한 친구가 권리금까지 주면서 가게를 인수해 갔다. 횡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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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정문 쪽으로 자리를 옮겨 치킨집을 열었다. ‘치킨이 땡기는 날’이란 간판을 걸었다. 박대표가 직접 작명했다. 간판 때문이었을까? 학생들이 이 집 앞에만 오면 이상하게 치킨이 땡긴다며 매일 왔다. 개강파티, 종강파티, 중간 기말고사 후엔 예약만으로 운영했다. 엘지, 두산, 롯데, 기아 등 프로야구 빅매치가 있는 날엔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손님이 더 많았다. 친한 단골 학생들이 도와준 덕분에 가게 일손도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정말 잘했다, 나머지 99가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가 준 행운


코로나의 기세는 대단했다. 정부가 주는 보조금으로는 가게 월세도 낼 수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6개월이 넘자 박대표는 초조해졌다. 재빨리 다른 사업으로 바꿔 타야겠다고 생각한 박대표 귀에 코인에 투자한 주변 사장님들의 대박 소문이 꽂혔다. 대박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어떤 투자회사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 투자회사는 국내 대기업의 모바일 상품권, 해외 유전 등 다양한 곳에 투자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가보니 세계 지도와 각국 현재 시간이 벽에 크게 장식되어 있었다. 딱 봐도 사업이 글로벌화 되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암호화폐였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200% 이상의 수익률을 붉은 화살표로 자랑하고 있었다. 박대표는 친척, 친구들의 돈까지 모두 끌어모아, 그곳에 투자했다. 코로나가 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존경하던 투자회사의 대표님을 악당으로 부르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달 착실하게 약속했던 수익금이 들어왔다. 고맙고 감사했다. 그 이후엔 준다 준다 말만 하고 한푼도 받을 수 없었다. 찾아가기도 했다. 차일피일 약속만 미루고 또 미뤘다. 원금까지 까먹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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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은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는다. 전화 통화는 간혹 되었지만, 이젠 전화도 받지 않는다.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경찰은 이런 경우 아무 힘도 못 쓰니 차라리 조폭을 부르자’, ‘등기부를 확인했더니 사무실도 다른 사람 명의로 되어 있더라’, ‘사기 전과 7범이더라’ 등등 고성과 억측이 오고 갔다.



무작정 태국으로


박대표는 자신을 믿고 돈을 빌려준 지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밥알이 모래알 같았다. 65kg이었던 몸무게는 56kg이 되었다. 얼굴이 까맣게 변했다. 주변 사람들은 박대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노심초사했다. 박대표는 결심했다.


전 재산을 털어 피해를 보상했다. 턱없이 부족했지만 지인들도 어쩔 수 없지 않냐며 타협했다. 학창시절 단짝이었던 친구가 태국으로 지금 당장 오라고 했다. 무조건 주변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단짝 친구도 사업에 망해 태국으로 떠난 지 4년이 지났다. 박대표는 산 송장처럼 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친구 말이 아니더라도 한국엔 단 1초도 더 있기 싫었다. 맥이 풀릴 때로 풀린 그의 손엔 『모비딕』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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