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모비딕-거대한 힘의 정체

by life barista

모비 딕의 의미


『모비 딕』이 무슨 뜻이지?


박대표는 이 책이 왜 자기 손에 들려 있는지 몰랐다. 더듬어 생각해 보니 급하게 고시원에서 나오면서 비행기에서 읽을 가장 두꺼운 책을 집었던 것 같다. 악당을 잡으려고 집까지 팔고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박대표였다. 지금 보니 책 표지에 실린 주름 잡힌 괴물의 눈동자는 작살을 튕겨내고, 사람도 쓰러트렸다. 언뜻 봐도 이놈이 모비-딕인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책 제목의 의미를 잘 이해한다면 전체 이야기를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희한한 이름이다. 모비-딕의 ‘모비’는 ‘거대한’이라는 의미다. ‘딕’은 ‘남자의 성기’를 뜻한다. 그렇다면 모비-딕은 거대한 남자의 성기란 의미인데, 말초신경 자극하는 삼류 음란물도 아니고, 이런 제목을 단 작가의 의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모비-딕은 향유고래고 향유고래 전체 모습은 남자의 성기와 닮았다. 그게 전부일까? 향유고래는 크고 빠르면서 사납기로 유명하다. 포경선을 공격하기도 하는데, 워낙 힘이 세고 빨라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드넓은 바다, 검푸른 심연에서 튀어나와 거대한 물보라를 만들면서 선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향유고래. 그 고래를 잡아야 먹고살 수 있는 선원들. 이 둘의 싸움은 목숨을 건 치열한 전쟁이다. 그렇지만 바다에서 향유고래를 맞상대한다는 건 단순히 생계를 위한 밥벌이 때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고래잡이 말고도 덜 위험한 직업이 얼마든 있다. 게다가 바다에서 고래와 싸운다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모비-딕은 덜렁 고래의 이름만은 아닐 것 같다.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넓디넓은 바다. 그 안에 내가 잡아야만 하는 거대한 무언가가 있다. 그런데 그 무언가는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있기는 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안다고 해도 그것은 나를 죽일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졌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내가 죽을 수도 있다.


모비-딕은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박대표는 일단 여기까지 생각하고 첫 문장을 읽었다.


첫 문장


"나를 이스마엘이라고 불러 달라."(Call me Ishmael)


『모비딕』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스마엘?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박대표는 금방 이 이름의 의미를 낚아챘다. 유태인들이 믿음의 조상으로 떠받치는 아브라함에겐 아들이 둘 있다. 하나는 이삭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이스마엘이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하녀로부터 얻은 아들이다. 그러니까 이스마엘은 믿음의 조상이 가진 불신 때문에 태어난 것이다. 이스마엘의 혈관엔 ‘믿음’의 피와 ‘의심’의 피가 함께 흐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스마엘이 『모비딕』을 이끌어가는 이야기꾼이다. 박대표는 피식 웃었다.

‘그럼, 이 사람 말을 믿어야 하는 거야, 믿지 말아야 하는 거야?’


믿음의 조상이 하나님을 의심해서 낳은 아들. 그렇다면 그 아들은 하나님의 선택이 아니란 의미. 하나님의 선택은 이삭이었다. 인간 아브라함이 선택한 결과인 이스마엘. 박대표는 순간, 인간인 자신이 이스마엘의 말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하나님의 선택인 이삭의 말을 기다려야 할지 주저했다. 소설은 첫 문장부터 박대표를 깊은 바다로 끌고 들어갔다.



이스마엘은 식인종 야만인인 ‘퀴퀘그’와 함께 고래잡이 배에 오른다. 이스마엘은 퀴퀘그를 통해 자신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 점차 깨닫는다. 기독교와 서양문명은 자신을 교양인으로, 퀴퀘크를 야만인으로 차별했다. 나아가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퀴퀘그를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고 있었다. 이스마엘, 그 자신도 전통 기독교인들이 볼 땐, 죄의 산물인 주제에 말이다. 그는 퀴퀘크의 자유로운 정신과 용기에 크게 매료된다.

이들이 함께 승선한 포경선의 이름은 ‘피쿼드’이다. 피쿼드는 백인에게 처음으로 전멸당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다. 바다에서 인간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배 이름으로는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몇백 년 동안 평화롭게 살던 어느 날, 피쿼드로 불리던 그들은, 난생처음 본 백인들에게 잔혹하게 죽어갔다. 피쿼드는 아무런 이유 없이 여자와 아이까지 전부 죽임을 당했다. 피쿼드는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이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피커드호는 산 자의 배가 아니라 죽은 자들의 배가 아닐까, 박대표는 생각했다. 그가 보기엔 피커드호는 바다에 떠 있는 공동묘지 같았다. 이것은 그들의 운명이 앞으로 어떠할지를 보여주는 암시가 아닐까?


나를 사로잡고 있는 거대한 힘


이쯤 읽고 나니, 박대표는 『모비딕』이란 책제목이 살짝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스마엘, 퀴퀘크, 피쿼드는 기독교, 서양문명, 백인이라는 기득권에 의해 무시되거나 죽임을 당한 이름들이다. 기독교, 서양문명, 백인이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모두 기득권을 누릴 수 있었을까? 아니다! 반드시 남자여야만 했다. 인류 역사에서 아무 근거 없이 막대한 기득권을 누린 자들은 거의 모두 남성이었다. 남근은 남성이라는 이유 없이 기득권을 누려온 집단의 상징이다. 거대한 남근, 즉 모비-딕은 그동안 인간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인정해 왔던 무의미하고 거짓된 그러나 그 무지로 인해 거대해질 대로 거대해진 힘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박대표는 책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자신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존경해 왔던 힘, 자신 또한 갖고 싶어 안달복달했던 그 힘을 조용히 더듬어 봤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역시 ‘돈’이었다. 자본주의의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칠 수 있는 힘. 그 누구든 잡아먹을 수 있는 힘. 그러나 갖고 싶다고 아무나 가질 순 없는 힘. 그것을 잡으려면 목숨도 아끼지 않아야 하는 힘. 내 영혼과 육신 모두를 사로잡고 있는 힘.


도대체 나는 언제부터 돈의 힘을 삶의 목표로 갖게 되었을까? 그건 혹시 그림자에 불과한 건 아닐까? 그림자를 쫓는 나 역시 그림자에 불과한 건 아닐까?


우연히 펼쳐진 곳에는 박대표가 밑줄 친 문단이 있었다.


"여기 지구상에서 소위 그림자라고 불리는 것이 사실은 우리의 진정한 실체인지도 몰라. 우리가 영적인 것을 바라봄에 있어서 그것은 마치 굴조개가 바다 밑에서 태양을 바라보며 흐린 물을 가장 맑은 공기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을 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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