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모비딕-모든 인간은 샴쌍둥이

by life barista

진정한 본질


에이해브의 몸은 의족 때문에 비틀거렸지만, 그의 영혼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만의 작살을 갈고 또 갈았다. 그에게 안락한 삶과 목숨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만의 진정한 본질을 끝내 지키고 싶었다. 기존 세상과 맞선 악인은 실상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흰 고래도 인간도 악마도 이 늙은 에이해브의 진정한 본질, 가까이하기 어려운 그 본질은 건드릴 수 없어.”


대표는 에이해브가 마치 자신처럼 느껴졌다. 향유고래를 쫓아 태평양을 샅샅이 돌아다닌 에이해브와 돈을 쫓아 자본주의의 바다를 훑고 다녔던 자신이 다를 바가 없었다.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고 나서 복수의 광기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그의 모습과, 돈에 치이고 사람에게 속아 삶의 의미와 열정을 잃어버린 자신은 다를 바가 없었다. 돈과 사람 핑계를 댔지만, 진짜 자신을 물어뜯은 건 욕망이었다. 돈만 있으면 인생이 천국으로 바뀔 거라 믿고 쉼 없이 달려왔는데, 돌아온 건 상처와 죄책감 그리고 허무함이었다.


죄책감.JPG


박대표는 자신의 진정한 본질이 뭘까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안락하고 무난한 생활을 버려서라도, 그러다가 목숨을 잃더라도, 반드시 지켜내고 싶은 삶의 가치와 의미가 나에게 있는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내가 끝끝내 찾아내고, 이겨내야만 하는 모비딕은 과연 무엇인가? 모비딕을 찾아 나는 다시 인생의 거친 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



모든 인간은 샴쌍둥이


공항에 나온 친구는 박대표를 보자마자 꼭 안아주었다. 박대표에게 "마이뺀라이"(ไม่เป็นไร)를 계속 말해주었다. 마이뺀라이는 ‘괜찮다’라는 뜻의 태국말이다. 큰일을 당한 사람에게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라고 말하고 싶을 때 사용한다. 낙천적이고 여유 넘치는 태국인들은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태국에 온 지 15년이 흘렀다. 이런 저런 일을 했다.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가 파도처럼 반복되었다. 그때마다 마이뺀라이를 읊조렸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가족의 사랑이 박대표의 마음을 키우고 꾸몄다. 그는 자신의 본질을 깨달았다. 그 본질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싸워 이겨내야 할 것도 발견했다. 깨달음의 과정엔 이스마엘의 깨달음이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나의 이 상황이 살아 숨 쉬는 모든 인간의 처지와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대부분의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샴쌍둥이처럼 결합되어 있을 뿐이다. (…) 내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은 밧줄의 한쪽 끝뿐이라는 사실이다.”


썀쌍둥이.JPG 연합뉴스 캡처



박대표는 권리금을 받고 문방구를 팔았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횡재라 여기면서 속으로 ‘앗싸!’를 수도 없이 외쳤던 자기 모습도 같이 끌려 올라왔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모두 샴쌍둥이처럼 결합되어 있을 뿐인데, 나는 달랑 내 호주머니만 챙기면서 살았다. 투자회사 대표와도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을 뿐인데, 그도 자기 잇속만 생각하고 나를 지탱해주던 밧줄을 놓아 버렸던 것이다.


지금 태국에서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인간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중요한 건 나는 밧줄의 한쪽 끝만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대표는 자신이 붙들고 있는 한쪽 밧줄을 꽉 잡는다. 내가 밧줄을 놓으면 누군가는 죽음의 바다 속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밧줄의 다른 한쪽은 그들의 몫이다. 그들도 자신들의 진정한 본질을 걸고 줄을 든든하게 당겨 줄 거라 믿는다.


박대표는 얼마 전, 예비 작가들을 위한 자기만의 방 사업을 시작했다. 그들의 글은 각자의 본질로 반짝이는 별과 같았다. 그 별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공유 서재와 작지만 알찬 개인 집필실을 마련한 후, 박대표 역시 자신만의 글을 쓴다.


그의 글은 검은 바다를 헤엄쳐 나가, 하얀 고래와 만난다.


흰고래.JPG ▲흰고래 미갈루.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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