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공정하다는 착각-설마, 몰랐어?

by life barista

“우리 부모님이 요트부 감독에게 돈을 찔러줬어. 덕분에 난 스탠포드에 들어왔지.”


아무리 뻔뻔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까발리진 못할 것이다. 2019년 미국을 뒤흔든 명문대 부정입학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입시 부정 사실을 자녀들에게 비밀로 했다. 그들은 왜 떳떳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잠깐만! 지금 이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그럼 내가 도둑놈이라고 자기 자식에게 자랑하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담?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을 훔친 걸까?


능력주의가 원칙이 되는 사회에서는 승리자가 ‘나는 나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여기에 섰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공평한 사회는 꿈일 뿐이다. 현실은 공평하지 않다. 진짜 문제는 공평하지 못한 현실에 그만한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만한 이유란 도덕적인 이유, 즉 떳떳한 이유를 말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분노로 폭발하거나, 무기력으로 시들어 더 이상 사회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능력주의는 그럴듯한 명분을 준다. 기회는 공평하고, 과정은 공정하니, 결과는 능력껏 가져가시라! 공정한 경쟁에서 승리한 이유는 오직 하나, 나의 뛰어난 능력! 능력주의의 도덕적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입시 부정 학부모들이 훔친 것은 바로 이러한 정의로운 승리와 능력에 대한 도덕적 인정이었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이들이 기부입학제도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기부입학은 그야말로 돈으로 산 것이니까, 정의로운 승리자 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능력자로 자부할 수 없다. 부모의 돈은 학생의 실력에 비해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하다.


김과장은 여기까지 쉽게 읽어나갔다. 기회는 공평하고, 과정은 공정하니, 결과물을 능력껏 가져가는 게 뭐가 나빠! 이 말은 대통령 선거 때 나부끼던 구호와도 비슷했다. 도대체 능력주의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건지 김과장은 좀체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더 읽어보자.


재능과 노력을 보상하는 체제라고 생각하는 건, 승자들이 승리를 오직 자기 노력의 결과라고, 다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라고 여기게끔 한다. 그리고 그보다 운이 나빴던 사람들을 깔보도록 한다. (…) 정상에 오른 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자격이 있는 것이고, 바닥에 있는 사람 역시 그 운명을 겪을 만하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과장은 소파에 뉘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버드 MBA 신입직원이 자신을 밀어붙이던 분노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 당당한 새파란 분노의 근거와 자신이 느꼈던 시뻘건 모멸감의 이유를 방금 확인한 것이다. 능력주의에서 진 사람들을 깔보는 건 승리자만이 아니다. 실패자는 스스로에게도 욕을 먹는다. 진 사람은 이 공정한 게임에서 진 건 다 내 책임이라고 자신을 더 모질게 닦달한다.

김과장도 그랬다. 김과장은 지금 자신이 겪는 학력에 의한 차별을 어느 정도 당연히 여겼다. 그리고 그 책임을 자신이 고스란히 껴안았다. 가난한 집안 형편을 탓하지 않았다. 가난은 나랏님도 어쩌지 못한다니 나라 탓도 하지 않았다.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 믿었다. 좋은 날이 당최 오지 않자, 자기 딸만은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해선 안 되겠다 싶어 사교육에 열을 올렸다. 정 못 참겠다 싶으면 야간대학이나 방송통신대를 알아봤다. 일과 가정 두 가지 삶만으로도 저녁엔 죽을 지경이라, 약한 체력과 의지를 탓하며 대학의 꿈을 접곤 했다. 의지가 이렇게 약해 빠졌으니 부당한 취급을 받아도 싸다며 모질게 자책했다.

그렇다면 능력주의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어떨까? 엄청난 자부심과 자존감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 놓는다.


능력의 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승리자다. 그러나 상처 입은 승리자다. 나는 그 사실을 내 학생들을 보고 알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불타는 고리를 뛰어 통과하는 일을 거듭해왔고, 그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많은 아이들이 아직도 분투하고 있다. 생각하고, 탐구하고, 나는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해야 가치 있게 살아갈 것인가 숙고하면서 대학 생활을 보내지 못하고, 싸우고 또 싸운다. 놀랄 만큼 많은 아이들이 정신 건강에 이상을 겪고 있다. (...) 대학생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설문 이전 1년 이내에 자살을 고려했다. (...) 그들은 살인보다 자살로 더 많이 죽어간다.




책에 딸의 지친 얼굴이 인쇄돼 나타났다. 딸의 얼굴 뒤로 수많은 아이들의 핏기 없는 표정들이 쓰러져 있었다.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8년째 자살이라는 뉴스가 생각났다. 2020년 청소년 통계에 의하면 학생 10명 중 4명은 여가시간이 하루에 채 2시간도 안 된다고 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우울감도 높아지고, 2016년 이후 사교육 시간은 꾸준히 증가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어릴 때 딸은 자연스럽게 친구 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친구를 집에 데려오기도 했다.


“너는 친구들하고 놀 거 다 놀고 언제 공부하니? 숙제는 하고 노는 거지? 뭐? 안 했다고? 너 엄마 말이 우습니? 이게 지금 몇 번째야? 엄마 미치는 거 보고 싶어?”


이런 무시무시한 협박을 들은 뒤, 딸은 혼자 다녔다. 그때 딸은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반실성한 사람처럼 울면서 딸에게 소리 지른 그 날은, 대졸 후배가 김과장보다 먼저 승진한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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