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공정하다는 착각-일의 존엄성

by life barista

나의 일은 우리 사회를 얼마나 좋게 만들고 있는가


우리가 여러 다른 일들 사이에서 무엇을 더 높이 평가하는지에 대한 재고가 있어야 한다. (…) 배관공이나 전기기술자, 치과위생사 등이 되는 법을 배우는 일은 공동선에 기여하는 훌륭한 과정으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SAT 점수가 낮은 사람이나 아이비리그 대학에 갈 만한 재력이 없는 사람이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하는 과정으로 여길 게 아니라 말이다.

한여름, 음식물쓰레기를 내놓을 때마다 김과장은 코를 틀어막고 오만상을 쓴다. 며칠 썩은 음식물쓰레기는 즙이 되어 뚝뚝 떨어진다. 한 손엔 쓰레기통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론 코를 막는 자기 모습이 영 처량하다. 골목에 쌓인 쓰레기들이 자화상 같이 느껴졌다. 썩은 물이 된 고등어는, 한 달 전 만 해도 동해 바다를 누볐을 생명이었다. 사람이 사는 일 중 먹는 것이 8할이요, 그 먹는 것 중 8할은 다른 생명체의 몸이다.

내가 저들을 씹고 삼킬 자격이 있을까, 자격이 자격지짐으로 바뀔 무렵, 은밀하고도 위대한 에너지가 골목에 등장한다. 이 에너지는 까딱까딱 노란색 소리를 내며 일주일에 세번 나타난다. 이윽고, 육중한 쓰레기통이 바퀴에 실려 골목을 누빈다.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하시는 청소 아저씨께서 집앞에 오신 것이다. 그의 발걸음은 우리 삶을 그대로 빼다 박은 쓰레기를 향한다. 뚜벅뚜벅 다가가 번쩍 들어 올린다. 원래 두 분이 하시던 일을 지금은 혼자 하신다. 운전대를 놓자마자 급히 내린 무심한 표정과 손놀림은 이제는 두 배 이상 무심하고 분주해졌다. 아저씨는 몸으로 삶과 일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삶은 원래 힘든 거라고. 우리가 특별히 뭘 잘못해서 힘든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살아내라고. 자책하기엔 삶이 너무 짧고 아름답다고. 이왕이면 내 삶이 누군가를 먹이고 살리는 것이 되면 좋지 않겠냐고.'

김과장은 죽비로 등짝을 맞은 듯 정신을 차렸다. 청소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차에 오르셨다. 트럭은 좁은 골목을 10미터쯤 비집고 내려갔다. 아저씨의 일은 계속됐다. 가로등 아래 비친 그의 움직임이 마음 갤러리 한가운데 그림처럼 걸렸다.

마이클 센델은 능력주의가 일의 존엄성을 깎아내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일이란 경제인 동시에 문화이며, 생계를 꾸리는 방법이자 동시에 사회적 인정과 명망을 얻는 원천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하는 일이 더이상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할 때, 불만과 증오는 커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 더 큰 원인일지 모른다고 김과장은 생각했다.

우리가 기여하는 것의 진짜 가치는 우리가 받는 급여액으로 판단할 수 없다. 급여액은 (…) 수요와 공급의 우연적 상황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기여분의 참된 가치는 우리 노력이 향하는 목표의 도덕적, 시민적 중요성에 달려 있다.


김과장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의 노력이 향하고 있는 목표는 무엇이냐고. 그 목표는 도덕적, 시민적 중요성이 있는 것이냐고. 꿀 먹은 사람 마냥 침만 꼴깍 넘겼다. 평생 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로 일 해오신 엄마 얼굴이 떠오른 건 왜인지 몰랐다.


엄마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똑똑한 아이들이 공부하는 곳을 청소하신다며 자랑스러워 하셨다. 강의실이 깨끗해야 학생들이 건강하고, 건강하고 똑똑한 학생들이 우리나라를 더 건강하고 똑똑하게 만들 수 있지 않겠냐며 특유의 입담을 발발휘하시곤 하셨다. 엄마의 목표는 분명 도덕적, 시민적 중요성을 향해 있었다. 그러면서도 공부 잘했던 딸을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해선 잠시 침묵하는 것으로 혹은 조용히 자리를 떠나는 것으로 대신 답했다.

장벽을 허무는 일은 좋다. 누구도 가난이나 편견 때문에 출세할 기회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좋은 사회는 ‘탈출할 수 있다’는 약속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저렇게 불공평하고 참혹한 곳에서 어떻게 탈출하셨나요? 비결이 뭔가요?


누가 만든 말인진 모르겠지만, 우린 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지옥 같은 곳에선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는 게 답이다. 그래서 우리는 멋지게 탈출한 사람들에게 탈옥의 성공 비결이 뭐냐고 앞다투어 질문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답은 늘 공부였고, 좋은 대학이었다. 그러면 우린 받아 적은 정답을 우리 아이들에게 그대로 따라 하라고, 그럼 저 사람처럼 탈출할 수 있다고, 그러니 제발 엄마 말만 믿고 열심히 공부만 하라고 했다. 학력 때문에 수모를 당한 날이면, 엄마처럼 살지 말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탈출해야만 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은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를 순 없다. 비록 있어 보이는 일도 아니고 받는 돈도 적지만, 나라가 나라 꼴을 갖추려면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그런 일들을 오늘도 묵묵히 해내고 계신 분들이 우리나라엔 너무나도 많다. 사회적 인정과 성공의 명예가 있다면 그분들께도 돌아가야 한다. 나아가 그분들이 자신의 사회적 공헌도에 맞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 그분들의 경제적 몫을 시장에게만 맡겨선 안 된다. 시장은 이미 권력과 편법 때문에 오랫동안 삐딱해져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나서서 그만한 보상을 해야 한다. 그런 사회가 건강하고 똑똑한 사회다.


김과장이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하기로 한 저녁을 내일로 미루자고 하신다. 같이 일하시던 아주머니께서 청소하던 학교 건물에서 돌아가셨다며 우셨다. 이 더운 날,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건물을 혼자 청소하셨단다. 코로나가 생기면서 그 건물에서만 매일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6개 넘게 나왔단다. 엄마는 언젠가 당신이 청소하시는 건물 이름이 영어로 뭐냐, 한자로는 어떻게 쓰냐고 어둡고 무겁게 물어보신 적이 있다. 돌아가신 분이 청소하시던 건물 이름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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