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공정하다는 착각-능력도 운빨이다

by life barista

운 vs 실력


김과장이 아직 여고생 티를 벗지 못했던 신입 시절, 교육팀에서 20년 넘게 일하신 한부장님은 이렇게 푸념했다. 자기 앞에 누가 있는지 알면서 하는 하소연인지, 아무도 없기에 속 편하게 하는 혼잣말인지 모를 말이 그의 입에서 절뚝거리며 나왔다.


“세상에서 젤 무서운 놈이 운빨 좋은 놈이야. 실력만 있어선 운 좋은 놈을 이길 수 없어.”


한부장님은 실력과 운을 대립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어떤 사람이 좋은 부모를 만나 좋은 DNA를 물려받은 건 그의 실력일까? 우수한 DNA가 잘 자랄 수 있는 교육 환경에 그가 있었던 것은 그의 실력일까? 공부하는 재능을 딱 짚어 목숨 거는 사회에 태어난 것은 그의 실력일까? 축구나 노래 등 특별한 몇 가지 재주에 수 백억원이 몰리는 것은 단지 그의 실력 때문만일까? 이 모든 것이 적절하게 잘 맞아 돌아간 것은 그의 실력일까?


마이클 센델은 능력주의에 취한 사람들은 공동체나 신 또는 행운에 대한 감사와 겸손함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그 결과 오만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동체? 신?? 행운??? 에이~, 당신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계신가요? 이렇게 가볍게 넘어갈 일은 아니다.


김과장은 자기 삶 전체를 돌아보았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자기가 모든 걸 관리하고 책임진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부모님 덕분에 태어났다. 아플 땐 병원과 의사가 있었다. 학교엔 선생님과 교과서가 있었다. 학교까지 가는 길은 잘 포장되어 있었고, 필요할 땐 지하철을 이용했다. 시장에는 많은 물건이 차고 넘쳤다. 그 어느 것 하나 자신이 만든 건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착착 잘 맞아 떨어져서 내가 지금까지 배우고 성장하고 먹고 살았다는 사실을 김과장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실력 때문에 얻은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뻔뻔함도 김과장에겐 없었다.


마이클 센델은 능력주의 역시 운에 기초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임금이 결정되는 방식은 도덕적인 가치판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시장에서 임금이 결정되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일치라는 우연한 결과일 따름이다.


어쩌면 우리는 전지전능한 신이 어련히 알아서 세상을 잘 꾸려나갈 것을 믿는 것처럼, 그냥 능력주의라는 신이 알아서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잘 차별하고 있다고 믿어 왔는지 모른다. 마이클 센델은 자유시장경제의 대부격인 하이에크의 말을 인용해 경제적 보상과 도덕적 자격이 아무 상관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애당초 경제적 보상과 개인의 능력, 도덕적 자격은 전혀 무관하다고 봐야 한다. (…) 이 가치는 수요와 공급의 우연한 일치점에 따라 좌우된다. (…) 하이에크는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가 가진 재능이 우연히 사회에서 높은 가치를 쳐주는 재능인 것은 나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며 도덕적 문제도 아니다. 단지 행운의 결과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 신화에 대한 과도한 맹신이 부모들로 하여금 기계적인 부모 노릇을 하게 만들었다면서, 2009년 11월 <타임>의 표지 기사를 소개한다.


"과잉 부모 노릇의 폐해:

엄마 아빠는 왜 이제 잡고 있던 줄을 끊어야 하나.”

기사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성공에 너무 집착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부모 노릇이라는 게 마치 어떤 생산물의 생산 과정처럼 되고 말았다.”


‘부모 노릇이 마치 어떤 생산물의 생산 과정처럼 되고 말았다.’에서 김과장은 말문이 막혔다. 몰입해서 봤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생각났다. 김과장 자신도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뭐라 비난할 처지가 아니었다. 자신 역시 능력주의의 위력에 눌려 딸을 연봉 많이 받는 생산품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어지는 문장은 이것이 김과장 개인 문제에 그치지 않다는 걸 알려주었다.

비록 여러 사회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부모의 개입이 심해지긴 했으나, 가장 심했던 곳은 불평등이 가장 크게 두드러진 곳이었다.

가령 미국, 한국 같은 나라였다.



한국같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김과장은 화장실에서 ‘지잡대’라는 말을 들었다. 신입직원들이 총무팀 누구누구를 가리키며 “지잡대 출신이야”로 말을 끝내는 걸 들은 것이다. 김과장은 급하게 검색해봤다. 지잡대의 뜻은 ‘지방에 있는 잡스러운 대학’이었다. 검색결과에는 이런 글들도 보였다.

“저희 학교는 지잡대인가요?”, “수시반수해서 지잡대”,

“지잡대 대학생 도와주세요.”

학력에 따른 사회적 차별을 온몸으로 인정하는 글들이었다.


‘대학도 다 같은 대학이 아니구나. 대학도 지잡대가 있구나. 그러니 나같은 고졸은 저들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 김과장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나쁜 이야기를 끊기 어려웠다. 그저 부끄러워 숨고만 싶었다.

능력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신입직원들만이 아니었다. 김과장은 공공의대 설립에 대해 찬반 의견이 날카롭게 부딪히던 어느 날, 친구가 보낸 그림 한 장을 또렷이 기억해 냈다.



이런 뉴스도 있다. 교육부가 학력 차별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에서 학력을 사실상 빼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학력’은 ‘성’, ‘연령’, ‘국적’, ‘장애’ 등과 같이 통상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그 이유로 밝히면서, 아울러 학력은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성취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합리적 차별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법안 검토의견에 적었다.



교육부의 주장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플라톤이 『국가』에서 상상한 이상적인 국가가 되면 가능할까. 그 국가에서는 어떤 부모도 자기 자식을 모르고, 어떤 자식도 자기 부모를 모르는 상태에서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공교육이 실시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런 공교육이 실시되고 있나? 이에 대해선 교육부가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여튼 한국은 이런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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