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소크라테스의 변명-죽는다고 다 끝나는 건 아니다

by life barista

죽는다고 다 끝나는 건 아니다


“죽으면 다 끝난다, 그러니 당장 살고 봐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죽음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다고 경고했다.


“내가 지혜를 사랑하면서 그리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검토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신이 나에게 명령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죽음이든 다른 어떤 일이든 두려워해서 배치된 자리를 떠난다고 한다면, 난 무서운 일을 저질러 버린 게 될 거예요. 그건 그야말로 무서운 일일 겁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제일 무서운 일은 죽음이 아니다. 신이 명령한 그 자리를 자기 이익을 위해 함부로 떠나는 일이다. 설령 그 명령을 지키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목숨을 부지하고자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한 사명이 있는 사람과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법정에서 대결하는 이야기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내린 재판은 B.C.399년 아테네에서 벌어졌다. 이 책은 이때 소크라테스가 배심원들과 전체 아테네 인들을 향해 한 연설을 플라톤이 재구성한 것이다. 플라톤이 쓴 작품 가운에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유일하다.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당시 재판 절차를 반영한 결과다. 당시엔 유무죄를 결정하는 1차 판결과 형량을 결정하는 2차 판결이 따로 있었다. 1차 판결 전에 원고는 피고의 유죄를, 피고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연설이 작품의 첫 번째 부분이다.

1차 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되면 그것으로 재판은 끝난다. 그러나 유죄가 선고되면, 그 죄의 형벌을 결정하는 2차 판결을 한다. 원고는 고소장에 이미 자기가 원하는 형벌을 기재해 제출했다. 소크라테스를 고소한 사람들은 고소장에 사형이라고 적었다. 남은 건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벗어나기 위해 대안 형벌을 주장하는 것이다. 배심원들은 원고가 주장하는 형벌과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는 대안 형벌 중 하나를 선택해 투표한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에게 적당한 형벌을 주장하는 연설이 《변명》의 두 번째 부분이다. 《변명》의 마지막 부분은 2차 판결에서 사형이 내려진 이후, 배심원들에게 하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연설이다.



소크라테스는 무슨 죄를 지었나


그럼 작품의 첫 번째 부분, 즉 1차 유무죄 판결 전에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연설을 보자. 원고 멜레토스가 고소한 소크라테스의 죄는 두 가지이다. 첫째, 나라에서 인정하지 않는 신을 섬긴다. 둘째, 젊은이들을 망친다.

첫 번째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대 아테네는 종교적으로 매우 개방적인 나라였다. 이것은 많은 나라들과 해상무역을 통해 번영한 고대 국가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외국인들이 섬기는 신이나 종교, 그들의 문화와 관습을 무시하거나 제한하면 장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자칫 주변 국가들로부터 외교적으로 고립되거나, 자기 나라의 신을 무시했다며 자존심을 건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소크라테스는 바로 그렇게 종교적으로 관용적인 아테네의 법정에 이상한 신을 섬긴다는 죄목으로 고소되어 있다. 이른바 불경죄이다. 대체 소크라테스는 어떤 신을 섬긴 것일까? 고발장을 한번 보자.


“소크라테스는 땅 아래의 일들과 하늘의 일들을 탐구하고 더 약한 논변을 더 강하게 만들며, 다른 사람들에게 바로 이것들을 가르침으로써 불의를 행하고 있고 주제넘은 일을 하고 있다.”


이상하다. 소크라테스가 섬긴다던 그 이상한 신에 대해선 단 한 마디도 없다. 죄목과 고소장의 내용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원고 측은 도대체 무슨 속셈일까? 《소크라테스의 변명》의 백미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방금 소개한 고소장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땅 아래의 일들과 하늘의 일들을 탐구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 약한 논변을 더 강하게 만들어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이다.


원고들의 속셈은 이렇다. 고소장에서 땅 아래의 일들과 하늘의 일들을 탐구하는 건 자연철학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자연철학자 중 하나인 아낙사고라스는 불경죄로 처벌된 바 있다. 대중들은 소크라테스가 아낙사고라스의 제자라고 생각하니, 그를 똑같이 불경죄로 엮을 수 있다.

더 약한 논변을 더 강하게 만들어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짓을 하는 자들은 소피스트들을 가리킨다. 원래 근거가 약했던 주장을 말주변으로 그럴싸하게 꾸미는 자들이다. 이들은 진실이 아닌 것도 진실로 보이게끔 만드는 말솜씨를 가르친다. 돈 많은 부자들은 이들에게 자녀 교육을 맡겨 정치가나 소송전문가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돈 없는 서민들은 가난해서 그럴 수 없다. 대중들은 이에 대해 불만이 많다. 돈 때문에 자기 자식이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진다고 생각해보라. 억울하고 분할 일이다. 그런데 대중들은 소크라테스도 소피스트 중 한 명이라고 믿는다. 소피스트는 거의 모두 외국인들이고 따라서 다른 신을 믿으리라고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실제야 어찌 됐건 말이다. 이러한 대중들의 생각을 이용해 소크라테스도 다른 신을 믿는 불경죄가 있는 것처럼 고소하자.


원고들은 사실이 아닌 걸 사실처럼 만들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법정에서 흔히 있는 짓거리이다. 위증이나 증거조작 말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를 고소한 원고들의 전략은 증인이나 증거를 조작하는 방법이 아니다. 대중들이 소크라테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doxa)을 악용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왜 그럴까? 아테네에는 배심원 제도가 있다. 수백 명의 배심원들이 다수결을 통해 재판한다. 소크라테스 재판의 경우엔 배심원이 500명으로 추정된다. 이들 500명의 배심원들이 피고 소크라테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재판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웃지 못할 일은 배심원 제도는 아테네가 민주주의로 운영되기 때문에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재판을 통해 선량한 사람을 죽이는 일은 독재 국가에서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재판은 다르다. 그는 민주정으로 도입된 배심원 제도를 악용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소크라테스 재판이 특별한 이유는 인류에게 민주주의라는 최고의 정치 이념을 선물한 바로 그 아테네에서 인류 최고의 철학자 중 하나로 숭앙 받는 소크라테스가 아주 정상적인 재판 절차에 의해 죽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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