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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barista Aug 13. 2021

내가 엄마 얼굴 아니까

나는 딸 아이가 뛰어내린 15층 아파트에 그대로 살고 있다.

아파트값이 크게 오를 걸 기대해서가 아니다. 눈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치매가 시작되기 한 두 해 전부터 시력을 빠르게 잃어갔다. 앞이 안 보이니까 아파트를 팔 수도 살 수도 없었다. 하긴 떨어진 딸 아이 몸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눈으로 뭘 할 수 있겠는가. 맨손으로 아파트 주차장 바닥을 미친 듯이 더듬고 쓸었다. 간신히 걸린 딸의 머리채를 잡고 길게 그리고 소리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치매라고 전부 다 잊어버리는 건 아니다.     


멍 자국이 하나 더 늘었네요.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혀를 차신다. 여러 번 일러주셨지만, 요양보호사란 말이 나에겐 너무 어렵다. 그래서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요양영양사 선상님이라고 부른다.


20년 넘게 산 집에서 부딪히고 넘어지는 일이 하루에도 수도 없다. 소파에서 무심코 일어서다 탁자 모서리에 정강이를 박았다. 요양영양사 선상님은 오늘도 내 정강이에 약을 정성스레 발라 주신다. 내 몸에 다른 사람의 손이 닿는다. 체온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20년 산 집도 앞 안 보이는 내겐 마법의 성이다.

없던 벽이 생기고 바닥은 갑자기 꺼진다. 화장실 문턱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형광등 스위치는 벌레처럼 기어 다닌다. 좀체 잡히지 않는다. 식탁과 싱크대는 서로 자리를 바꾼다. 내가 모르는 줄 알지만, 둘이 쑥덕거리는 걸 들은 적 있다.      


그날은 38도쯤 되었다.

매일 걷는 산책길에서 길을 잃었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땀이 더 많이 흘렀다. 앞이 잘 안 보여서 그러니 좀 도와달라는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짙은 선글라스 때문에 내 눈을 볼 수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아니면, 너무 더워서 산책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럴 땐 시각장애인용 지팡이가 아쉽다. 아직 그걸 쓸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는 사람 만나는 게 제일 무섭다.     


몇 시간을 헤맸을까.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햇볕이 눈물을 태웠다. 세상이 다 타는 것처럼 절망스러웠다. 그 때 굵고 친절한 아저씨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로 가세요?     


몇 마디가 오고 갔다.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계셨네요, 더운 데 힘드셨겠어요, 제가 모셔 다 드릴게요.    

 

집에 도착했다.

잡은 손을 그냥 놓을 수가 없었다. 정말 미안해서 그러니 집에 들어가 냉수라도 대접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내가 댁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이 신세를 갚겠냐고 부탁했다.     


제가 엄마 얼굴 아니까 괜찮아요.     


엄마? 내 아들 목소리가 아닌데. 내 아들은 공사현장에서 떨어져 죽을지도 모르는 아들 좀 살려달라면서 도장과 통장이 어디 있냐고 물었는데. 그러곤 내 손을 잡고 은행으로 곧장 가 천만 원을 빼 갔는데. 내 아들은 이제 집에 오지 않는데. 그런데 엄마라니.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 나같이 나쁜 사람의 아들이라니......     


엄마 얼굴을 안다는 그 아들 얼굴 한 번 봤으면 좋겠다.

그 아들 목소리를 치매가 잡아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아들 손을 잡았던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들 냄새가 났다.


소리내서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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