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갈 거야?”
“네. 가 봐야지요.”
“같이 가자. 다들, 퇴직한 사람 본인상에 누가 가냐면서 안 간다고 하네.”
전부장님이 돌아가셨다. 내가 이력서를 냈을 때, 전부장님은 인사과장이셨다. 부장님은 손글씨로 쓴 이력서를 정말 오래간만에 본다며 한참을 읽으셨단다. 나는 속으로 전략이 성공했구나 싶어 휘파람을 불었다. 입사 후에 알고 보니, 전부장님이 나를 적극적으로 미셨다고 한다. 당시 전부장님은 회사의 에이스셨다. 부장님 의견은 대부분 반영되었다. 사실상 부장님이 나를 뽑아주신 셈이다.
나야 이런 인연이 있어 마지막 모습을 배웅하고 싶었지만, 다른 직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회사의 에이스는 시기 질투를 많이 받는 자리이기도 하다. 적이 많다는 뜻이다. 때마침 2008년 금융위기 때 구조조정이 단행되었고, 부장님은 그 일의 팀장을 맡아 궂은일을 도맡았다. 소위 말해 피를 묻히는 일이었다. 전부장님은 자의반 타의반 칼잡이가 되었다. 구조조정 대상과 평소 전부장님과 부딪혔던 경쟁자들이 겹치면서 일이 커졌다. 누가 어떤 잘못을 구체적으로 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억측과 음모가 회사를 까맣게 덮었다.
모든 일은 지나간다. 구조조정도 끝났다. 늘 그렇듯 살아남은 자들은 잔치를 크게 벌였다. 그러나 예로부터 칼잡이는 잔치상에 앉지 못한다. 칼잡이는 버려지는 법이다. 전부장님은 구조조정 후 퇴사했다. 소문에 의하면, 대표가 전부장의 개인 욕심 때문에 구조조정에 문제가 많았고, 시간이 지체되었다며 책임을 물었다고 한다. 제2의 창업 기념식 때, 대표는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끝나 회사의 미래가 밝아졌다고. 무엇이 진실인지 아무도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전부장님은 한동안 회사에 모습을 드러내셨다. 다시는 오지 않겠노라 살기가 느껴질 정도의 다짐을 잊으신 모양이다. 1층 로비에서 보안 요원에게 제지당해 사무실까진 들어오지 못하셨지만, 거의 매일 몇 달을 그렇게 하셨다.
알고 보니, 전부장님은 배회성 치매를 앓고 계셨다. 배회성 치매는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치매라고 한다. 아무 데나 발길 닿는 곳으로 가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남은 조각 기억들이 마치 들것처럼 환자를 실어 나르는 경우도 있다는데, 부장님은 그곳이 회사였다. 본인은 처음 오는 것처럼 로비를 두리번거렸다. 로비 인테리어 공사도 전부장님 업무였다.
직원들이 쑥덕댔다. 동정의 말과 비아냥의 말 중 뒤엣말이 10배 정도 많았다. 나라도 인사를 해야지 싶었다. 용기를 내 한 번은 1층에서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셨다.
영전 속 부장님 얼굴은 평온했다. 예전에 미리 찍어 놓은 사진인지, 얼굴에 살이 있어 후덕하게 보였다. 날 알아보지 못하셨던 그날의 부장님 얼굴은 너무 야위어서 나도 모르게 울컥할 정도였는데.
상주인 아들은 회사에서 누가 올 줄 몰랐던 모양이다.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회사 상조회에서 보낸 조화를 한쪽으로 놓고 나서 상주로부터 죽기 전 부장님 생활을 짧게나마 들을 수 있었다.
부장님은 배회성 치매로 여기저기 다니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하셨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요양병원으로 옮겼고, 그곳에서 1년쯤 계셨다. 돌아가시기 6개월 전부터 대소변도 혼자 볼 수 없었고,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머리를 움켜잡고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셨다. 직접적인 사인은 뇌출혈. 늘 머리가 아프다며 잔뜩 인상을 쓰던 부장님 모습이 선하다.
영정 속 사진의 주인공은 언제든지 나로 바뀔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장례식에서 돌아온 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밥도 먹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이 태어나, 평생 일하다가 저렇게 쓸쓸하게 혼자 죽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허망했다. 게다가 평생 일했던 회사에서 버림받고 죽기 전까지 다시 오지 않겠다며 떠났는데, 치매를 앓자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곳이 회사였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노화, 죽음, 치매는 막을 도리가 없지 않은가. 평소에 아무리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 세 가지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뚜벅뚜벅 온다. 무차별적으로 온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 평생 이렇게 회사원으로 살다가 훌쩍 떠나는 거 아닌가. 너무 허무했다.
불안했다. 손이 떨렸고, 두통이 반복되었다. 이번 정기건강검진 항목에 뇌 CT를 추가했다. 전부장님의 생전 건강했던 모습, 두통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모습, 치매 환자였던 야윈 얼굴 그리고 영정사진이 어지럽게 허공을 채웠다가 사라졌다. 혼자 쓸쓸하게 죽는 것도 싫었지만, 자신의 이름과 가족까지 기억하지 못한 상태에서 죽긴 더 싫었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인간의 한계란 말을 처음 실감했다.
다음 날 아침, 무거운 머리를 한 채 나는 다시 출근했다. 누가 죽든 회사 일은 돌아갔다. 내가 죽어도 그럴 것이다. 죽은 사람 자리는 누군가의 승진 찬스가 될 수도 있다. 우울한 생각이 연이어 일어나자 마음 쉴 곳이 없었다.
종모양의 사내 메신저 알림이 모니터 하단 에서 깜빡거린다. 사내 독서 동아리에서 다음 달 모임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이 와중에 책모임이라니 귀찮았고 짜증이 났다. 동아리 가입이 후회스러웠다. 회사 사람들과 진지한 대화를 하려는 발상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 내가 안 보이거나 퇴사하면 기회는 이때라면 흉이나 볼 사람들. 내가 치매에 걸리거나 죽으면 그렇게 살더니 꼴 좋다 고소해할 사람들.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무관심한 사람들 아닌가.이런 작자들과 책은 무슨 얼어죽을 책이란 말인가. 냉소와 빈정이 가득한 눈에 책 제목이 얼핏 보였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확실히 있었다. 다시 보니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