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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barista Sep 03. 2021

그래도 쓴다

정말 오래간만에 출판사 대표님을 만났다.

내 책, 『철학하는 50대는 미래가 두렵지 않다』 2쇄본을 들고 오셨다. 2쇄는 생각도 못했는데 세종도서 선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분명하다. “가문의 영광입니다!!!” 호들갑을 떨면서 감사 인사를 드렸다.


“아이고 죄송해요, 제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2쇄 이야기를 못 드렸네요”

말씀하시는 대표님 얼굴에는 미안함과 모종의 씁쓸함이 엉켜 있었다. 불길했다.     


함께 점심을 했다.

대표님은 코로나 이후 출판업계가 그야말로 양극화라고 하셨다. 인문사회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는 완전히 빙하기, 주식과 부동산투자 쪽은 꽃피는 봄을 맞고 있다고. 폐업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요즘 많이 힘들다고. 서울문고 폐업, 반디앤루니스 폐업, 인터파크와 예스24 매각설 등 대형 서점들조차 버티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 출판업자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먹고 있는 평양냉면도 차갑고 밍밍한데, 대화 내용은 한술 더 떴다.     


사실 오늘 미팅은 10월에 내기로 했던 신간 때문에 잡은 것이다. 신간을 내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다. 원고를 9월까지 보낼 터이니, 일단 읽어보라고 했다. 계약은 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마음이 저렇게 불편한데 일이 손에 잡힐 리도 없지 않은가. 때를 기다려야지 별수 없지 않은가. 억지로 하는 일은 재미도 없거니와 성과도 별로였다.     


첫 책 계약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땐 마스크를 쓰지 않을 때였다. 대표님과 나는 서로 코드가 맞았다. 바로 이 사람이다, 서로 신이 났다. 대표님은 책 개요만 몇 장보고 아무것도 없는 나와 계약했다. 나는 몰랐지만, 대표님은 알았을 것이다. 이 책은 잘해 봤자 본전이라는 걸. 그래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흔쾌히 계약했다.


책이 나온 해 코로나가 터졌다. 안 그래도 안 읽히는 분야의 책인데, 사람들은 아예 서점에 가지 않았다. 주식과 부동산이 엄청나게 오르면서 투자서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유명 작가나 연예인이 아닌 이상, 팔리지 않았다. 당연히 내 책도 안 팔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첫 책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유명인도, 연예인도 아닌 내가 책을 써도 될까?주식과 부동산도 아닌 철학이니 독서니 인문학적으로 편향된 책을 과연 내야 할까? 우리 두 사람은 자신이 없었다. 나야 공부하고 글을 쓰면서 행복했지만, 대표님께 이 일은 생계 아니던가. 내가 어디에 썼듯이, 사유는 생계 앞에서 멈춘다.      


책도 상품인 이상, 팔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논리 앞에서, 나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아무튼 2쇄본을 들고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가족들과 저녁을 먹어야겠노라고, 쓰린 마음을 애써 달래고 있다. 사실 오늘 신간 미팅 때문에, 이번 주 눈에 불을 켜고 원고를 고치고 또 고쳤던 나로서는 기운이 한 움큼 빠졌다.     


그래도, 난 쓴다.

사람이 돈만 쫓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가족과 이웃을 잃으면 진정한 나도 잃어버린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경제만 챙기면 나라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생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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