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이 문장이 데미안에서 가장 소문난 문장일 게다. 우리는 왜 이 문장에 마음이 갈까? 아마 이런 이유가 아닐까.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을 내일이 반복되는 답답하고 지루한 내 삶을 상징하는 알. 그걸 깨려고 투쟁한다니 손맛이 짜릿하다. 약해 빠진 현실 순응형 인간인 내 손에 알을 깰 튼튼한 방망이를 쥐어주는 문장. 게다가 알을 뚫고 나와 창공을 비상하는 새의 얼굴은 어디서 많이 본 것처럼 친숙하다. 아! 저건! 내 얼굴이네! 이런 흐뭇한 상상을 만들어주는 문장.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쏘냐.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나는 내 세계를 깨뜨릴 생각이 1도 없다. 그저 내 세계가 한 뼘이라도 넓어지길 바랄 뿐이다. 밖은 전쟁이다. 엄한 파편이 튀어 재수 없이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사고를 미리 막으려면 내 세계를 둘러싼 보호막은 철갑을 두르고 있어야 할 판이다. 그걸 깨긴 왜 깨냐? 바보냐? 이런 마음의 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세계에는 그동안 경험했던 수많은 실패와 상처가 빨간 X 표시로 빼곡하다.
그 선을 넘으면 안 돼, 혼나!
내가 해 봤어!
아무 소용없어!
말하지 마, 아무도 네 의견 따윈 듣지 않아!
노력하면 그만큼 피곤하기만 해!
사람 바꿔 쓰는 거 아니거든!
여기엔 가능성이라곤 약에 쓰려고 해도 찾을 수 없다. 자기가 죽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알은 가능성의 세계다. 알에는 흰자와 노른자가 경계 지어 있지 않다. 그 안엔 생명력이 넘친다. 생명은 제한받지 않는다. 꿈틀거리면서 부여받은 자신을 온전히 찾아갈 뿐이다. 찾아가는 과정, 그 운동 자체가 이미 완벽한 나 자신이다.
저게 나야! 저 큰 바위 얼굴이 바로 나야!
저렇게 돈 많이 벌고,
유명한 사람이 바로 나야!
이게 바로 나란 말이야!
이런 나는 내가 아니다. 적이다. 모두의.
가능성의 세계인 알. 그 알을 깨트리고 나온 새. 이런 새에게 고정된 자아상이 있을 리 없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큰 새나 새들의 왕은 새에겐 새장과 같은 감금이요, 제한이다. 멈추지 않은 가능성 그리고 그 가능성에 한계짓지 않는 것이 새이다.
경계없는 세계인 알. 그 알을 깨고 나온 새에게 경계란 없다. 심지어 새에겐 하늘과 땅도 별개 공간이 아니다. 새는 자신의 존재로, 자신의 비행으로 그것을 증명한다. 예로부터 새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상징이었다. 동서고금 수많은 샤먼들은 새 가면을 쓰고 깃털을 꽂았다. 새는 하늘과 땅을 동시에 노래하는 시인이다.
얼핏 보기엔 하늘과 땅은 천국과 지옥처럼 대립돼 보인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대자연의 순환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그 비가 강과 바다를 이룬다. 강과 바다는 땅의 생명을 자라게 한다. 생명은 호흡한다. 비는 숨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새는 비, 강, 바다, 생명, 호흡이다. 새는 하늘과 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증언한다. 새는 대자연의 순환을 몸에 새겨 넣은 채 오늘도 날고 있다.
경계 없는 알. 대자연의 하나 됨을 증언하는 새. 이 새가 향하는 곳은 신이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을 한 몸에 동시에 갖는 새로운 신의 이름이다. 세계에 경계란 없다. 모든 것은 하나이다.
그렇다면 선과 악은? 선과 악마저 하나란 말인가. 착한 사람이 되라고 모든 어른들이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착하게 살겠노라 몸에 문신까지 한 사람이 적지 않은데, 선악이 하나라니.
우리가 나를 발견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이러한 당연한 이분법일지도 모른다. 나라는 존재는 숱한 선과 악의 충돌과 화해가 만든 생명 아니던가. 생명의 어떤 면이 선악으로 딱 구분되던가. 새벽 미명이 대낮이 되고 이내 밤이 되었다가 다시 동이 터오듯, 삶은 어느 굴곡은 밝다가 어둡고, 또 어느 때는 낮과 밤이 미묘하게 얽히고설킨, 낮이라고도 밤이라도 할 수 없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 대부분 아니던가.
하지만 우리는 삶이 그렇다고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선악마저 사실 하나......라고 말하면 천인공노할 짐승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며 다시 착한 사람으로 깎여 나갔다. 그러나 한쪽으로만 깎인 보석은 한쪽 빛에만 반응한다. 방향이 바뀌면 반짝임은 금방 사라지고 빠르게 어두워진다.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빨리 우울해지고 지치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