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세계
싱클레어는 두 세계 앞에 서 있다. 여기서 말하는 두 세계는 밝음과 어둠의 세계를 말한다. 밝음의 세계는 아버지의 세계다. 이 세계는 빛, 깨끗함, 친절함, 성경, 찬송가, 크리스마스 파티로 아름답고 거룩하게 채색되어 있다. 제대로 된 성공한 인생을 살려면 이 세계를 벗어나면 안 된다. 반면, 어둠의 세계는 하녀와 직공의 세계다. 이 세계는 유령, 도살장, 감옥, 주정뱅이, 강도, 살인, 자살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여기에 있다간 인생을 그야말로 제대로 망치게 된다. 하루속히 벗어나야만 한다.
싱클레어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밝음과 어둠이라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세계가 겹쳐 있다는 사실을 경험한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거룩한 찬송가를 부르던 하녀는 정육점 아줌마와 싸울 땐 악마 소리를 낸다. 정직해야만 하는 자기 자신 역시 또래들 앞에서 똥폼 한 번 잡으려고 영웅담을 꾸며댔다가 계속 돈을 뜯기는 앵벌이 신세가 되고 만다. 돈을 상납하기 위해 두려움 속에서 도둑질과 거짓말을 반복했다.
밝음과 어둠의 경계가 싱클레어의 마음에서 뒤엉켜 버렸다.
혹시 그런 경계 따윈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닐까.
지금껏 나는 감쪽같이 속아온 건 아닐까.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이러한 경험들은 한 소년의 부드러운 가슴에 칼질을 해 댄다.
“누구도 감지하지 못한 이런 체험으로 우리들의 운명에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선이 그어져 간다. 그런 칼질과 균열은 점점 늘어나고 아물고 잊히지만, 우리 마음속 가장 비밀스러운 암실에서는 여전히 살아남아 계속 피를 흘린다.”
밥값을 해라!
이익을 올려라!
최고 실적을 만들자!
회사의 밝은 세계는 신성한 돈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다움, 동료애, 사회적 책임은 어둠의 세계에 속한 것처럼 쉬쉬했다. 어떻게든 회사의 밝은 세계에 속하고 싶었다. 쉽진 않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며 꾸역꾸역 꾸려왔다. 다들 그렇게 산다며 별나게 굴지 말라고 자신에게 면박을 주기도 했다. 양심에 찔려 쩔쩔매던 일도 이젠 제법 무덤덤하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쩔쩔매던 일은 여전히 쩔쩔매는 게 맞다. 내 양심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까지 척척 해낸다면 뭔가 이상해진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 양심의 자유 따윈 개나 줘버리라는 눈치 속에서 먹은 밥알들이 어찌 제대로 소화되었겠는가. 그것들은 깨진 유리 조각처럼 양심 여기저기에 박혀 있다. 그 유리 조각에 찔려 내 안에 있는 데미안은 지금도 계속 피를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아선택권
회사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따라서 나만의 개성이란 시스템의 고장 원인이 된다. 매뉴얼은 나를 1도 생각하지 않고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팀장의 임무 중 하나는 팀원들의 고유한 개성이 시스템을 망치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통제의 기술은 크게 두 가지, 당근과 채찍이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의 목표를 향해 설계되어 있다. 그 목표는 팀원들이 회사를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팀장은 팀원이 자신의 개성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발휘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팀원들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때로는 달콤한 맛에 침을 흘리고, 때로는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면서 자기 통제권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팀장에게 맡긴다.
“사람은 누구 앞에서든지 다른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그런데도 누군가가 두렵다는 건 나를 다스리는 힘을 타인에게 맡겨 버렸기 때문이야.”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두려움이다.
개성 있는 사람으로, 나답게 살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을까?
혹시 팀장이 나를 말 많고 불평불만만 하는 저성과자로 낙인찍지나 않을까?
그 낙인 때문에 동기들보다 뒤처지지나 않을까?
후배들에게 추월당하지 않을까?
나 때문에 시스템이 고장 나면 어쩌나? 개성이고 인권이고 일단 잘 보이면 좋은 거 아닌가?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좋은 것을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없는 사람은 언제나 두렵다. 두려움은 자신만의 가치를 깎아 먹는다. 나의 가치를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곤, 그를 나의 주인으로 삼고 자발적 노예가 된다. 노예는 주인의 눈치를 본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결정한 것을 최종 평가하는 사람이 따로 있기 때문에 굳이 애써 고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에 의해 나는 영웅도 될 수 있고, 쓰레기도 될 수 있다. 내가 여기 있어도 좋다고 인정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 그 귀한 자리에 나는 다른 사람을 앉혔다. 나의 자아선택권을 팀장에게 넘겨 버린 것이다.
“우리들은 공인된 것과 금지된 것을 각자 자신의 힘으로 찾아야만 해.”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우린 우리의 힘으로 찾아야만 한다. 그럴 힘이 없는 사람을 노예가 되어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속 편한 회사원이 내 운명이라고? 팀장이 내린 평가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지, 자기 자신에게 부여한 가치에 따라 개성 넘치는 삶을 살던지 그 결정권은 바로 내 마음에 달렸다.
“운명과 마음은 하나의 개념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