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월02일의 일기
최근 유튜브 시청의 노예가 된 기분이다. 나의 아침은 모 방송국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 ‘00공장’을 시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뉴스에 대한 갈증을 풀고 싶은 나의 욕망이 만들어 낸 작은 습관이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이어지는 집밖에서의 지루한 일과는, 유튜브에 업로드된 음악을 틈틈이 들으며 심신을 정화하는 행위로 버텨낸다. 귀가하는 지하철에선 구독 중인 1인 크리에이터들의 따끈따끈한 콘텐츠를 찾아보고, 집에 도착하면 경건한 마음으로 실시간 인터넷 방송 콘텐츠를 시청한다. 유튜브로 시작해서 유튜브로 막을 내리는, 그야말로 유튜브 에 갇힌 하루라 할 만하다.
최근 내가 푹 빠진 영상 콘텐츠를 하나만 꼽아보라면, 바로 격투게임 콘텐츠다. 국내 굴지의 격투게임 고수들의 화려한 게임 실력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콘텐츠인데, 얼마나 꿀잼인지, 방송을 보다보면 나에게 허락된 소중한 저녁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어떤 점이 그리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사실 속 시원한 답변이 생각나진 않는다. 다만 짐작건대, 현 세대에겐 고대 유물이 되어버린 오락실 게임에 대한 아련한 향수에서 비롯되는 추억의 감성팔이와, 상대를 향해 치고받고 주먹을 휘두르는 게임 캐릭터들로부터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감이 일상의 피로를 날려줄 만큼 좋은 스트레스 해소제이기 때문인 것 같다.
게임의 이름은 ‘킹오브 파이터즈’ 시리즈다. 어린 시절 학교 앞 문방구에 설치된 오락기를 점령했던 바로 그 게임이다. 나 역시 부모님께 받은 용돈의 대부분을 그 게임을 즐기는 데 사용했었다. 실력은 하수에 속해서, 동네에서 잘하기로 소문난 형들이나 친구들이 하는 걸 어깨 너머 구경하곤 했었다. 축구 말곤 딱히 즐길만한 오락거리가 없었던 그 시절, ‘킹오브 파이터즈’는 마치 가뭄을 적시는 단비처럼, 나의 학교생활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줬던 게임이었다. 그랬던 게임을, 이제 다 큰 성인이 되어 또 다시 구경하고 있다. 구경장소만 바뀌었을 뿐이다. 동네 오락실에서 스마트폰으로. 참으로 아이러니 했다. 최신 IT기술의 집합체인 스마트폰과 현대 정보통신 기술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유튜브를 통해, 20여 년 전의 추억과 뜻밖의 재회를 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한 때, 아날로그 감성을 앗아간 주범이라며 남몰래 원망의 심정을 키워왔던 디지털 문명에게, 이제는 거꾸로 추억 속의 즐거움을 현재에서 실현시켜준 은인의 칭호를 붙여야 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그런 생각은 잠시였을 뿐. 유튜브의 무서운 면모를 다시 한 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게임 콘텐츠 영상을 거듭해서 시청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유튜브에 접속하자, 유튜브의 메인 화면을 수놓는 콘텐츠들이 모두 ‘격투 게임’관련 영상들로 채워져 있었다. ‘재미 반 의무감 반’의 마음으로 시청했던 시사 콘텐츠도, 보면서 지식과 교양을 쌓곤 했던 강연 프로그램도, 모두 추천 콘텐츠 목록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상태였다. 유튜브가 빅데이터를 통해 콘텐츠 이용자의 취향을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영상 클립을 추천해준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리도 빠르게 태세를 전환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또한 정확히 말해, 나의 취향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단지 새로운 취향이 하나 추가됐고, 거기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 뿐이었다. 그런데 유튜브란 녀석은 마치 “당신의 취향을 파악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영상들이 보고 싶은 거죠? 저는 다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유튜브 녀석에게 속 시원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너는 나를 몰라. 너의 알고리즘 속에 나를 가두려 하지 마!”
유튜브를 보는 것은 어느덧 일상에 없어선 안 될 소중한 라이프스타일이 되어버렸다. 유튜브 없는 세상은 이제 꿈도 꾸지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교, 유튜브에 대한 알 수 없는 섬뜩함을 느낀다. 정확히 말해, 이는 알고리즘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간단히 일반화시키고, 더불어 속내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 관심법의 소유자 알고리즘. 그들의 분석과 추천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질수록, 복잡한 내면을 가진 존재인 우리 인간들 역시 예측 가능한 단순한 존재로 점차 변해가는 것은 아닐까? 나의 취향은 누구의 것이며 어디서 왔는가? 혹시 빅데이터가 분석해낸 추천 시스템에서 온 것이라면, 나는 이미 알고리즘의 테두리 안에 갇혀버린 ‘알고리즘 버블’에 휩싸여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튜브의 노예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유튜브의 미심쩍은 책략을 감시하는 냉정한 파수꾼이 될 것인가? 아무래도 아직은 전자로 남는 게 편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