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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들불 Feb 08. 2020

왜 증오하는 대상을 닮아갈까

증오하는 대상은 곧 기준이 된다

영화 <300: 제국의 부활>에서 크세르크세르 왕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나는 관대하다


근육질 남자들로 시선을 끌었던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르가 한 말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는 결코 관대한 왕이 아니었다. 크세르크세르는 왕이 된 후 이집트를 강압적으로 복속시키고 혹독한 공포 정치를 실시했다. 그리고 바빌로니아 문명을 파괴하고 그리스 정벌을 위해 대규모 전쟁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특히 영화 <300>의 배경이 되었던 테르모필레 전투 이후 아테네 도시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후대 역사가들의 평가를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그는 관대하기보다는 포악한 군주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실제로 관대하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관대한 왕으로 칭송받기를 원했는데 이는 성경*에도 잘 나타나 있다. 크세르크세르는 그리스 정벌을 위한 대규모 출정 전에 수개월 동안 연회를 연다. 그리고 연회에 참석한 모든 백성들에게 술을 하사했다. 황금 잔에 든 이 술을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되도록 백성들을 배려해 주었다. 원치 않으면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단지 자신의 관대함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연회에 참석하라는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고 왕비를 폐위시키고 결국 참수했다.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반란을 진압하고 대규모 그리스 정복 정쟁을 이끌었으며 사소한 일로 왕비를 참수했던 왕은, 정말 스스로를 관대한 군주라고 여겼던 것 같다. 왜 그는 스스로를 관대하다고 확신했을까? 


여기서 잠깐 정신물리학에서 대조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인식대조실험**을 살펴보자. 여기 차가운 물, 상온의 물, 뜨거운 물이 담긴 3 개의 양동이가 있다. 먼저 한 손은 차가운 물에 그리고 다른 한 손은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두 손을 모두 꺼내 동시에 상온의 물에 담근다. 


두 손을 모두 상온의 물에 담그고 있는데도 차가운 물에 담갔던 손은 마치 뜨거운 물에 담그고 있는 느낌이 들고 반대로 뜨거운 물에 담갔던 손은 차가운 물에 담그고 있는 느낌이 든다. 같은 상온의 물이지만 그 직전 사건에 따라 온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크세르크세르가 정말 자신이 관대하다고 믿었던 이유는 늘 가혹한 행동을 비교 기준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 실험과 비교하자면 항상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고 있었으므로 상온의 물도 뜨겁게 느꼈을 것이다. 즉, 평범한 행동에도 자신은 매우 관대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만약 관대한 사람과 늘 함께하거나 관용에 대해 본받을 만한 사람이 있었다면 자신이 관대하다는 생각은 함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웬만한 행동으로서는 관대하다고 느끼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니체, 선악의 저편 146>


증오하는 대상이 가진 성격이나 행동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으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비슷한 행위를 하게 될 수 있다. 선교활동이나 간증과 같은 신앙 행위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미신이라며 비판하던 사람들이 정작 힘들 때 점집을 찾아가는 것을 나는 종종 목격했다. 비이성적인 행위를 비판하는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자기가 한 행동은 상대적으로 이치에 맞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평소 자주 불같이 화를 내는 상사를 증오하고 있는 어느 한 사람을 생각해 보자. 그는 절대 상사처럼 행동하지 않아야겠다며 마음속에 칼을 갈 것이다. 오랜 기간 증오심과 함께 그 상사가 했던 행동을 마음속에 담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써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 후 언젠가 자신이 화를 낼 때는 자신도 모르게 그 상사가 했던 행동이 기준이 되어 버린다. 자신은 상사가 했던 행동에 비하면 화를 낸 것 같지도 않은데 상대방은 크나큰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누군가를 증오하던 사람들이 점점 그들과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증오하고 있는 그 행동을 규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미워하면서도 점차 닮아 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마치 얼음장 같은 물에 손을 계속 담그고 있으면 웬만해선 아무리 차가운 물도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매일 매시간 누군가를 증오하고 있다면 한 가지는 확실하다. 자신도 그와 비슷해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음물에만 계속 손을 담그고 있지 말자.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자신의 적을 죽이려는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자기 마음속에 그 적이 영원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보라
<니체, 아침놀 407>




[참고문헌]

*구약성서 에스더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이 크세르크세르 임.

**인식대조실험은 조지 버클리의 <하일라스와 필로누스의 대화> 중 "감각 사물들은 지각될 때 실재한다"의 증명에 인용된 내용임. 본문의 실험 설명은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1 (21세기 북스)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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