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하는 대상은 곧 기준이 된다
나는 관대하다
크세르크세르가 정말 자신이 관대하다고 믿었던 이유는 늘 가혹한 행동을 비교 기준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 실험과 비교하자면 항상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고 있었으므로 상온의 물도 뜨겁게 느꼈을 것이다. 즉, 평범한 행동에도 자신은 매우 관대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만약 관대한 사람과 늘 함께하거나 관용에 대해 본받을 만한 사람이 있었다면 자신이 관대하다는 생각은 함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웬만한 행동으로서는 관대하다고 느끼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니체, 선악의 저편 146>
증오하는 대상이 가진 성격이나 행동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으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비슷한 행위를 하게 될 수 있다. 선교활동이나 간증과 같은 신앙 행위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미신이라며 비판하던 사람들이 정작 힘들 때 점집을 찾아가는 것을 나는 종종 목격했다. 비이성적인 행위를 비판하는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자기가 한 행동은 상대적으로 이치에 맞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평소 자주 불같이 화를 내는 상사를 증오하고 있는 어느 한 사람을 생각해 보자. 그는 절대 상사처럼 행동하지 않아야겠다며 마음속에 칼을 갈 것이다. 오랜 기간 증오심과 함께 그 상사가 했던 행동을 마음속에 담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써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 후 언젠가 자신이 화를 낼 때는 자신도 모르게 그 상사가 했던 행동이 기준이 되어 버린다. 자신은 상사가 했던 행동에 비하면 화를 낸 것 같지도 않은데 상대방은 크나큰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누군가를 증오하던 사람들이 점점 그들과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증오하고 있는 그 행동을 규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미워하면서도 점차 닮아 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마치 얼음장 같은 물에 손을 계속 담그고 있으면 웬만해선 아무리 차가운 물도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매일 매시간 누군가를 증오하고 있다면 한 가지는 확실하다. 자신도 그와 비슷해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음물에만 계속 손을 담그고 있지 말자.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자신의 적을 죽이려는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자기 마음속에 그 적이 영원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보라
<니체, 아침놀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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