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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들불 Feb 12. 2020

왜 소크라테스를 죽였을까

문화적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

땅 아래에 있는 것과 하늘 위에 있는 것을 탐구하는 괴상한 사람

누군가의 고소장 내용에 나온 표현이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자연을 연구하고 탐구하는 것이 왜 ‘괴상한’ 사람일까? 이 피고인은 누구일까?

 

그렇다. 바로 소크라테스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라면 독재나 제정 국가도 아닌 민주국가 아래에서 사형을 받을 만한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왜 그들은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했을까?


기원전 5세기 후반 아테네 상황을 잠깐 살펴보자.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상당히 높은 민주주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한 후 독재정권과 유사한 30인 참주 체제(기원전 404년)가 세워졌다. 그러나 불과 일 년 만에 다시 민주정으로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만큼 아테네 시민이 가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의식 수준이 높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재판에서는 배심원 제도가 이미 정착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2008년 이후에나 시작한 국민참여재판과 비슷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민주주의 하에서 이루어진 정당한 재판을 통해 아테네인들은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왜 그랬을까? 


그것은 당시 아테네 시민들이 가진 민주주의에 대한 성향과 관련이 깊다. 이들은 수준 높은 민주주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문화면에서는 보수 성향이 강했다. 한 마디로 정치에서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도 문화에서는 독단주의를 고수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기존 관습이나 편견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함으로써 인간의 무지를 깨닫고자 했던 철학자다. 현재 시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게 도대체 왜 문제가 될까 싶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당시 아테네 분위기는 기존 관습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문화를 주장하는 것은 공동체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는 곧 자신들의 체제,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그가 태양은 뜨겁고 붉은 돌덩어리이며 달은 땅이라고 주장했다
<멜로토스의 소크라테스 고소 내용 중에서>


어떤 관습이기에 아테네 시민들은 그렇게 민감했을까? 그들에게 있어 세계란 지금 우리가 단순 이야깃거리로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와 같은 것이었다. 즉, 신들의 세상과 질서였다. 태양은 제우스의 아들인 아폴로 신이며 달은 셀레네 여신인 것이다. 그래서 이 무렵에는 천체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탄핵하도록 허가하는 법이 통과되기도 했다. 물론 태양이 단순히 불덩어리이고 달은 땅덩어리라는 것을 소크라테스가 최초로 주장한 것도 아니었다. 아테네 황금시대를 이끈 페리클레스가 아테네로 초대했던 철학자 아낙사고라스의 견해*였다. 훗날 아낙사고라스 역시 아테네 인들에 의해 탄핵되었다.



반쪽짜리 민주주의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반쪽짜리 민주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바로 중우(衆愚)정치와 같은 것이다. 다른 문화들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기존 관습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색안경이 아닌 맨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진정 민주주의를 자랑스러운 정체(政體)로 지키고자 한다면 단지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에 있어서도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이 가지는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진정한 민주(民主)주의를 위해서 말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최고 반전을 보여주었던 한 영화감독이 과거 문화 블랙리스트에 등록되어 억압받던 시절이 있었다. 이것은 숨길 수 없는 우리 역사다. 다음은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이유라고 한다. 2500여 년 전 문화 보수주의자들을 지금 다시 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 설국열차(2013년작): 시장 경제를 부정하고 사회 저항 운동을 부추김
○ 괴물(2006년작): 반미 정서와 정부의 무능을 부각해 국민의식을 좌경화
○ 살인의 추억(2003년작): 공무원과 경찰을 비리 집단으로 묘사해 국민에게 부정적 인식 주입


지금 우리는 블랙리스트 시절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참고문헌]


* 버틀런드 러셀, 러셀 서양철학사, 서상복 역, 을유문화사


- 소크라테스 고소장 내용들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천병희 역, 숲

버틀런드 러셀, 러셀 서양철학사, 서상복 역, 을유문화사


- 블랙리스트 관련 기사 및 출처

https://www.ytn.co.kr/_ln/0106_202002112250107829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11214


- 표지 그림 출처 (자크 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

wikipedia, license/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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