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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들불 Oct 23. 2020

모두가 이타적인 마을

이타심이 미덕이 될 수 있는 이유


이타주의의 자기모순


이타심이란 자기 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자기희생을 통해 남을 돕는 이타심을 높은 덕으로 간주하며 모두가 칭송한다. 그런데 만약 우리 모두에게 이타심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다시 말해 '모든 주민들이 이타심을 가진 마을'이라는 가상의 마을에 살고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어느 날 그 마을 주민 중 누군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타인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고 있다. 이때 도움을 받는 사람은 자신을 도우려는 그 사람이 하는 행위를 막으려 할 것이다. 도움을 받는 사람 역시 이타심 때문에 누군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보는 우리는 어떨까? 먼저 눈앞에서 스스로를 희생하려는 사람을 두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 행위를 그만두도록 막을 것이다. 이타심이 있다면 마땅히 그럴 것이다. 또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앞서 언급한 상황이 반복된다. 


이렇게 모두가 이타심을 가진 사회가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이 미덕은 결코 실행될 수 없다. 마을 사람 누구도 다른 사람이 스스로를 희생하도록 두고 보지 않으며 오히려 희생 행위 자체를 금기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자살을 금기시하듯 말이다. 따라서 '모두가 이타심을 가진 마을'에서는 이타심을 미덕으로 칭송하지도 않을 것이다. 누군가 희생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한 이 사회에서 이타심은 영원히 실행될 수 없다.


모두가 이타적인 사회에서 이타심의 미덕은 결코 실행될 수 없다. 누군가의 희생을 두고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타심의 미덕이 실현 가능한 이유


실제 현실은 다르다. 누군가는 희생하고 누군가는 그에 따른 도움과 이익을 받는다. 그리고 이것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은 희생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기까지 한다. '모두가 이타심을 가진 마을'에서와는 정반대다. 앞서 가정했던 '모두가 이타심을 가진 마을'에서는 자기희생을 통해 타인을 돕는 행위가 금기시될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누군가의 희생을 손 놓고 보고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희생으로 인한 이익을 누군가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타심이라는 미덕은 실현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기심이 있으므로 가능한 것이다. 또한 인류는 공동체 내 모두가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경우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가장 취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목 및 정착생활이라는 오랜 집단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희생을 통해 타인을 돕고자 하는 이타심을 미덕으로 추앙한다. 이렇게 이타심이 미덕이 되고 나면 공동체 내 개인들은 자발적으로 따르려고 하게 된다. 공동체 내에서 미덕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나 ‘동정하는 자의 우월감’을 부추기면서 실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정 욕구나 우월감과 같은 이기심은 미덕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희생하고 누군가는 그 희생을 받아들임으로써 이 미덕은 지속될 수 있다. 이렇게 하나의 미덕은 사람들 사이에서 전파되고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기심을 변호하거나 이타심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타심을 도덕으로 떠받들며 자신과 타인에게 자기희생을 강요하는 폭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들이 원하는 사회, 즉 '모두가 이타심을 가진 마을'에서 이타심은 결코 미덕이 될 수 없었다. 누군가의 이기심이 없다면 이타심이라는 미덕 역시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 이타심을 강요하는 이기심은 과연 누구의 이기심일까?


당신이 완벽한 미덕을 지녔다면 반드시 그 미덕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바로 그 희생을 통한 이익 때문에 당신의 미덕을 떠받들며 칭송한다.
<니체, 즐거운 지식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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