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들불 Oct 23. 2020

사이비 이기주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원인 모를 안도감을 느낀다. 마치 이기적인 인간이 되라고 하는 듯해서다. 난 이타적이기보다 이기적이다. 그래서 이렇게 이기적이 되라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거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정말 이기적일까?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사이비 이기주의 vs 진정한 이기주의


이기주의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이기주의자를 사전에서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자기 자신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세상에 통용되는 자신과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다. 


세상에 통용되는 자신은 타인의 시선과 기준 그리고 타인의 평가로 만들어지는 자신이다.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 자아의 그림자 혹은 환영(幻影)인 것이다. 세상에 통용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곧 자아의 그림자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이것은 사이비 이기주의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직장을 원하고 '저' 대학을 원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세상에 통용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인가? 만약 부모가 원하는 직장 그리고 사회가 우러러보는 대학이기 때문에 원하는 것이라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다를 가능성이 크다. 세상에 통용되는 자신을 하나씩 제거해 나갈 때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조금씩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통용되고 있는 자신에 대부분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자신은 오히려 낯설다. 그러나 진정한 이기주의는 바로 이 진짜 자신, 즉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높은 급여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기만족이라는 보상이 훨씬 컸던 경험 말이다. 이때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원했던 일에 가까울 것이다.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진정한 이기심인 것이다



진정한 이기주의에서 시작하는 이타심


그렇다면 진정한 이기주의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에 통용되는 자신도 결국 나 자신이다. 사이비 이기주의, 다시 말해 세상에 통용되는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도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똑같지 않은가? 굳이 힘들게 구별하면서까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맞는 말이다. 둘 다 똑같이 자기 자신이다. 진정한 이기주의이든 사이비 이기주의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이비 이기주의에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없다. 진짜 자신이 빠져 있는 것이다. 자아가 아닌 자아의 그림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셈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돈을 벌고 사치스럽게 살아도 진짜 자신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공허하다. 


이에 비하여 진정한 이기주의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족한다.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돈을 벌어도 이 사람은 만족감이 넘칠 수밖에 없다. 언제나 진짜 자신이 가진 내면으로부터 충만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충만함은 주변으로 흘러넘친다. 주변에 있는 타인에게로 흘러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이타심이다.  이제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격언의 무게가 실감 난다. 


우리는 대부분 세상에 통용되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이비 이기주의에 익숙해져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진정한 이기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종교나 개인의 신념에 따라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신념을 따르는 행동은 진짜 자신이 가진 내면의 충동으로부터 나온다. 자신이 정한 기준을 충족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자신,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이러한 욕구 충족의 의지가 신념과 행동으로 흘러나와 타인을 돕는 실천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타인을 돕는 행위가 반드시 자기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이타심은 자기희생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내면의 충실함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자기희생은 그 뒤에 따르는 결과일 뿐이다.


스스로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생각했던 사람들, 혹은 이타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모두 일생 동안 스스로를 위해 진정 이기적인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 모두는 단지 '자신의 자아'가 아니라 '자아의 환영(그림자)'를 위한 일만 해왔을 뿐이다.
<니체, 아침놀 105>




[참고문헌]

*니체, 박찬국 역, 아침놀 105항, 책세상

이전 08화 사직서를 던지지 못하는 진짜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