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 원인이 아닌 결과
옛날에는 결혼해서 자식 낳고 사는 게 당연했는데 말이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기적이야. 결혼도 안 하려고 하고 애도 갖지 않잖아.
<60대 남성>
나는 비혼주의자다. 내 삶을 다른 인생에 묶어 두는 것 같아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제 결혼을 안하면 세금이 부과되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너무 부당하다.
<30대 남성>
우리 부부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삶에 보다 충실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아이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다. 그 옛날 실레노스가 미다스에게 알려주었다는 그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은 것은 바로 태어나지 않는 것, 무(無)로 존재하는 것 아닐까.
<40대 부부>
로마 제정시대, 위에서 언급한 파피우스 법이 공표되던 시기는 그리스식 도시국가 체제가 사라진 이후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도시국가 체제에서는 각 개인이 일반적으로 사회의 유기적 부분으로 간주되었다. 사람들은 각자 제자리가 있으며 다양한 사회적 공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곧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각 개인의 본성과 가치는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도시국가 체제가 알렉산드로 대왕 이후 헬레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개인을 공동체 속 존재가 아닌 보다 자립적인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 보편성보다는 개인의 특수성에 집중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비슷한 현상을 근대 유럽 문화에서도 볼 수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만 국한한다면, 사업화 세대와 그 이후 X세대를 거쳐 MZ세대까지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는 듯하다. 산업화 세대의 각 개인은 국가를 위한 하나의 부품이었다. 개인의 행복조차도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 필요했을 뿐이다.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짙게 남아있는 사람들이 분명 없지는 않을 테지만, 지금 대다수 사람들은 거대 사회의 부속품으로 소모되는 것을 거부하며 개별적인 삶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아 가고 있다. 이것이 비혼과 딩크라는 문화면에서 2,000여 년 전 로마 제국 시대와 현재의 우리나라가 놀랍도록 닮은 이유가 아닐까.
젊은 사람들은 자기만 알고 조직에 헌신하는 태도가 없어. 이젠 눈치 보여서 회식조차 같이 하기 힘들다니까.
<어느 40대 팀장>
요즘은 이런 일이 거의 없을지 모르겠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자기들만 생각하고 조직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푸념이었다. 일부러 큰소리로 말해서 다들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말이다.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에 헌신하지 않는 게 아니다.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떠나니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 원인이야 다양할 것이다. 직장상사가 꼴 보기 싫거나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이 형편없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이기심이 근본 원인은 아닌 것이다. 또한 회식 자체가 싫은 게 아니다. 분위기 때문에 싫은 것이다. 몇몇 사람들에게 회식은 조직 단합에 대한 그릇된 믿음이나 과시욕을 채우는 수단이 된다. 그러나 이런 성격을 띠는 회식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울 뿐이다. 한마디로 재미없고 시간 낭비인 것이다. 그래서 회식이 싫은 것이다. 나는 이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한 이기심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기심을 사건이 일어난 근본 원인으로 환원하는 어리석음에 빠지는 것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기심에 가려 사건의 진짜 원인이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단순히 결과로써 나타난 이기심에 집착하는 것보다 현상을 나타나게 한 근본 원인이자 본질을 파악하는데 온 힘을 집중하는 것이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헌신 - 그대들은 도덕적 행위의 특징이 헌신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최선의 행위에서처럼 최악의 행위에도 헌신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라***
<니체>
** 버틀란드 러셀, 러셀 서양철학사 (서상복 역), 을유문화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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