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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들불 Jan 08. 2020

딩크와 욜로, 우리 시대만의 독특한 문화?

이기심, 원인이 아닌 결과

옛날에는 결혼해서 자식 낳고 사는 게 당연했는데 말이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기적이야. 결혼도 안 하려고 하고 애도 갖지 않잖아.
<60대 남성>
나는 비혼주의자다. 내 삶을 다른 인생에 묶어 두는 것 같아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제 결혼을 안하면 세금이 부과되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너무 부당하다.
<30대 남성>
우리 부부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삶에 보다 충실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아이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다. 그 옛날 실레노스가 미다스에게 알려주었다는 그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은 것은 바로 태어나지 않는 것, 무(無)로 존재하는 것 아닐까.
<40대 부부>


지인들에게 들었던 말들이다. 아마 주변에서 한 두 번 들어봤을 법한 말들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2,000여 년 전인 서기 9년, 로마 시민들도 우리와 비슷한 얘기들을 했을 것이라고 상상해보자. 놀랍지 않은가. 당시 비혼자들이나 자녀가 없는 부부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서기 9년에 공포한 법*에 잘 나타나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25세~60세 남성과 20세~50세 여성은 의무적으로 결혼해야 한다

2. 독신자나 자녀가 없는 부부에게는 막중한 세금을 부과하고 상속권을 제한한다


이 법은 약 300년이 지나 콘스탄티누스(A.D. 306~337) 시대가 되어 어느 정도 완화되었으니, 비혼과 무자녀 문제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비혼, 딩크DINK, 욜로YOLO라는 사회적 현상이 지금 우리 시대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2,000여 년 전에도 단어는 다르지만 비혼과 딩크 문화가 만연해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비혼이나 딩크가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그것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이기심이 비혼과 딩크라는 삶을 선택하는 데 있어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이기심 역시 또 다른 사회적 현상에 따른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기심이 딩크나 비혼 문화의 최초 근본 원인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기심 역시 어떤 원인에 의해 생겨난 결과일 뿐이다. 


로마 제정시대, 위에서 언급한 파피우스 법이 공표되던 시기는 그리스식 도시국가 체제가 사라진 이후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도시국가 체제에서는 각 개인이 일반적으로 사회의 유기적 부분으로 간주되었다. 사람들은 각자 제자리가 있으며 다양한 사회적 공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곧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각 개인의 본성과 가치는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도시국가 체제가 알렉산드로 대왕 이후 헬레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개인을 공동체 속 존재가 아닌 보다 자립적인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 보편성보다는 개인의 특수성에 집중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비슷한 현상을 근대 유럽 문화에서도 볼 수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만 국한한다면, 사업화 세대와 그 이후 X세대를 거쳐 MZ세대까지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는 듯하다. 산업화 세대의 각 개인은 국가를 위한 하나의 부품이었다. 개인의 행복조차도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 필요했을 뿐이다.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짙게 남아있는 사람들이 분명 없지는 않을 테지만, 지금 대다수 사람들은 거대 사회의 부속품으로 소모되는 것을 거부하며 개별적인 삶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아 가고 있다. 이것이 비혼과 딩크라는 문화면에서 2,000여 년 전 로마 제국 시대와 현재의 우리나라가 놀랍도록 닮은 이유가 아닐까.


물론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사회적 환경이라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누군가는 결혼과 출산을 기꺼이 행복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또 누군가는 비혼이나 비출산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비혼과 비출산이라는 선택에 관여한 이기심은 사회적 환경에 따른 결과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인이 아닌 결과로써의 이기심

젊은 사람들은 자기만 알고 조직에 헌신하는 태도가 없어. 이젠 눈치 보여서 회식조차 같이 하기 힘들다니까. 
<어느 40대 팀장>


요즘은 이런 일이 거의 없을지 모르겠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자기들만 생각하고 조직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푸념이었다. 일부러 큰소리로 말해서 다들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말이다.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에 헌신하지 않는 게 아니다.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떠나니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 원인이야 다양할 것이다. 직장상사가 꼴 보기 싫거나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이 형편없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이기심이 근본 원인은 아닌 것이다. 또한 회식 자체가 싫은 게 아니다. 분위기 때문에 싫은 것이다. 몇몇 사람들에게 회식은 조직 단합에 대한 그릇된 믿음이나 과시욕을 채우는 수단이 된다. 그러나 이런 성격을 띠는 회식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울 뿐이다. 한마디로 재미없고 시간 낭비인 것이다. 그래서 회식이 싫은 것이다. 나는 이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한 이기심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기심을 사건이 일어난 근본 원인으로 환원하는 어리석음에 빠지는 것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기심에 가려 사건의 진짜 원인이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단순히 결과로써 나타난 이기심에 집착하는 것보다 현상을 나타나게 한 근본 원인이자 본질을 파악하는데 온 힘을 집중하는 것이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헌신 - 그대들은 도덕적 행위의 특징이 헌신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최선의 행위에서처럼 최악의 행위에도 헌신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라***
<니체>






[참고문헌]

* <파피우스 포퐈이우스법> 한동일, 로마법 수업, 문학동네, 2019


** 버틀란드 러셀, 러셀 서양철학사 (서상복 역), 을유문화사, 2018

  군나르 시르베크/닐슨 길리에, 서양철학사 (윤형식 역), 이학사, 2017

 

*** 니체, 여러 가지 의견과 잠언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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