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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들불 Jun 05. 2020

모호함을 견디는 힘

편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세상 보기

무엇인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을 참아내기란 쉽지 않다. 모호한 상태에 놓인 상황들은 계속해서 우리 마음 한 구석을 쑤시며 괴롭힌다. 마치 어떤 일의 원인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을 때의 답답함이나 초조함과 비슷하다. 갖가지 생각들이 우리를 더욱더 혼돈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 모호한 상황이 찔러대는 '성가심'을 견뎌내는 것이 필요하다. 운전 중 보행자를 피해야 하는 것과 같이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단순히 고민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미 결정하고 난 후에는 그 결정에 대한 근거를 찾는 데 온 힘을 쏟게 되 때문이다. 결정된 것이 가치가 있는지 혹은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여부조차 상관하지 않게 된다. 여러 다양한 의견들을 외면한 채 결정된 것에 대한 강력한 편견이 생기는 것이다. 


일단 어떤 선택을 하거나 입장을 취하면... ‘기존의 태도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 때문에 우리는 이미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래야만 자신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확신할 수 있고, 그 결정으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로버트 치알디니*>


예를 들어 경마에서 사람들은 특정 경주마에 돈을 걸고 나면 그 말의 우승 확률을 훨씬 높게 평가한다. 물론 선택 전이나 이후나 각 말들의 우승 확률은 변함이 없다. 단지 선택했다는 것만으로 그 말의 정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우승에 대한 근거를 찾게 된다.* 로또를 구입한 후 그 번호가 마치 일등 당첨 번호일 것 같은 즐거운 상상에 빠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로또 당첨 확률은 내가 그 번호를 선택하기 전과 다를 바 없는데도 말이다. 사소한 일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평생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중요한 결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삶의 터전이나 직업 혹은 배우자를 고르는 일에서도 선택하는 그 순간부터 그 결정을 합리화하는데 남은 인생을 쏟아붓게 될지도 모른다. 자칫 편견이었을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모호함을 참는 것이 단순히 결정을 미룬다는 뜻은 아니다. 확정되지 않은 불안한 상태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강박을 견뎌야 한다는 말이다. 단순히 세상에 통용되는 가치이기 때문에 혹은 대다수가 걸어가는 길이기 때문에 혹은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그것을 선택하도록 내몰리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모호하고 불안한 상태를 벗어나려는 강박 때문에 무엇인가를 결정하게 된다면 편견에 빠질 가능성은 그만큼 더 커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신의 결정에 대한 근거를 찾는데 모든 정신적 자원이 소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한 것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해 온 힘을 쏟기보다 차라리 세상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보다 깊게 이해하는데 자신의 정신적 자원을 할애하는 것이 낫다. 그만큼 편견에 빠질 위험이 줄어들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이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자 하는 열망 - 이것만이 훌륭한 태도이다... 모든 것을 우리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심각하고 근본적인 착란으로부터 우리는 치유되고자 한다.
<니체**>




[참고문헌]

*로버트 치알디니, 황혜숙 역, 설득의 심리학 1, 21세기북스

** 니체, 안성찬 역, 유고(1881년 봄~1882년 여름)/니체전집 12,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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