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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들불 Mar 19. 2020

때론 지루함도 필요하다

지루함은 악이 아니다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 보다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당장 해야 할 일들도 많아 정신이 없는데 혹은 가족들 눈치 보여 무슨 일이든 해야만 하는 상황인데 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싶다. 그러다 갑자기 더 뜬금없이 탈무드의 속담이 떠오른다.


물고기를 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알려 주어라
<탈무드>


탈무드의 속담은 고기 한 마리를 주면 하루를 살 수 있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면 평생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약간의 억측과 재미 그리고 상상의 양념을 뿌리면 아마도 에크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을까?


물고기 잡는 법보다 고기의 존재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면 평생 어부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물고기가 가지는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면 그는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어부는 물론이고 생물학자나 요리사 그리고 선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면서도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강박에 사로잡혀 쫓기듯 해야 할 일을 찾기보다 가끔은 먼저 내가 누구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지루함은 존재를 들여다보는 창


그럼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가 추구하는 것이 사실은 가족이나 타인들이 원하는 것은 아닐까? 정답은 없다. 확실한 것은 잠시라도 온전히 '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시간 중 하나가 바로 지루함이다. 마크 A. 호킨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지루함은 존재를 들여다보는 창'이라고 했다. 잠시 동안이나마 존재와 조우하고 그곳을 짧게 여행하며 통찰을 얻은 후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창으로 보았던 것이다. 


지루함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을 때, 일주일 내내 바쁜 일로 정신없이 보내다 갑자기 찾아온 휴일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 퇴직이나 은퇴 후 일에서 찾던 의미와 정체성이 사라질 때 그리고 지금까지 믿었던 삶의 의미가 소멸되는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지루함과 마주칠 수 있다. 이 모든 지루함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루함은 곧 나태이자 악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지루함=나태=악'이라는 사회적 관습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든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루함 자체는 결코 악이 아니다. 죄는 더더욱 아니다. 문제는 지루함으로부터 쫓기듯 도망치기 위해 선택하는 잘못된 행동들에 있다.  


오래전 직장에서 3일간의 황금연휴를 맞은 적이 있었다. 연휴가 끝나고 다들 전형적인 월요병으로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싱글이었던 한 임원은 자신이 출근해서 얼마나 좋은지 출근하자마자 병이 다 나았다고 기뻐했다. 그 임원은 지루함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일에 강박적으로 몰입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호킨스의 표현을 빌자면 워크홀릭(일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지루함으로 인한 고통에서 고개를 돌리려는 세련된 수단’일 뿐이다.  물론 일을 사랑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일이든 취미든 자기가 원하는 활동에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은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진심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행동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단순히 지루함을 덮기 위한 행동이라면 차라리 존재를 들여다보는 창으로써 지루함을 곁에 두는 것이 낫다. 지루함이 곧 나태이며 분주함이 곧 능력이라는 사회적 관습 때문이라면 차라리 지루함을 선택하라는 말이다. 분주하다는 것이 자기 자신을 잊고 지내도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분주함을 선택하는 것보다 차라리 지루함을 곁에 두는 것이 낫다


지루함을 견뎌내는 힘


내 존재에 대해서 또한 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틈이 지루함이다. 가끔은 참기 힘든 지루함(권태)의 고통을 견뎌내는 힘도 필요하다. 다양한 취미의 편력에도 불구하고 공허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더더욱 지루함을 견디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 그리고 지속 가능한 일을 찾기 위해서다. 다양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내 삶에 지루함이 필요한 진짜 이유다.


창조적 정신을 지닌 사람들은... 일의 성공을 위해 오히려 지루함(권태)를 필요로 한다. 그들에게 권태란, 순조로운 항해와 즐거운 바람에 선행하는, 영혼의 불쾌한 ‘무풍 상태’인 것이다. 그는 이것을 견뎌내면서 그 결과를 끝까지 기다려야 한다. 
모든 수단을 다해 이 지루함을 몰아내려 하는 것은, 즐겁지 않은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   

<니체, 즐거운 학문 42>**


어차피 견뎌야 할 시간이라면 지루함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 지루함의 시간을 고마워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때때로 지루함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참고문헌]

*마크 A. 호킨스,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 서지민 역, 박찬국 해제, 틈새책방 - 1장, 3장 부분 발췌 요약 인용

**니체, 즐거운 학문, 안성찬 역, 책세상 – 112페이지 발췌 요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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