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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들불 Sep 03. 2020

단점 극복을 강요하는 사회

절제가 미덕인 사회


끊임없는 절제와 자기 극복이 미덕인 시대


나 자신이 가진 장점 한두 개를 찾기보다 개선해야 할 단점 수십 개를 찾는 것이 오히려 더 쉽다. 그만큼 평소 내가 부족한 점과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한 생각이 많은 탓이다. 단점이 많아 그런 것이니 특이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도 비슷하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채우거나 개선하는데 온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개선'하도록 내게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인들만 그런 게 아니다. 온갖 자기 계발서에서는 내 습관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경고한다.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스스로를 개조하지 못한 탓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열정과 의욕 따위는 잠시 참고 견디라고 얘기하는 책이 수년간 꾸준히 많이 팔리고 있다. 인간이 가지는 자연스러운 본성을 단순히 마쉬맬로우 따위에 비교하는 발상은 창의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난 부자도 아니고 남들이 말하는 '성공'에 가까운 인생도 아니니 어쩌면 그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그들의 말이 맞다고 한들 그것이 중요한 건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확신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그들이 말하는 '부자'나 '성공'이라는 단어 속에는 결코 삶을 풍요롭게 살아간다는 의미는 없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나 자신의 투영물이다


인간은 타인 혹은 사물에 자신을 투영함으로써 세상을 본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다.  타인 혹은 사물의 존재라는 개념은 내 안에 있는 자아가 타인 혹은 사물에 투영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타인과 공감한다는 것은 내 감정을 타인이 처한 상황에 이입하는 것과 같다. 타인이 하는 행동을 판단할 때도 마찬가지다. 타인이 가진 단점을 비난하는 이유는 내 안에 이미 그 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 비난(자학)하고 있는 어떤 특성을 타인에게서 다시 재발견하는 것이다.  만약 내 안에 없는 것이라면 결코 타인에게서도 그것을 발견할 수 없다. 그것이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러니 타인을 비난할 수조차 없다. 


멋진 안경을 맞추고 처음 외출할 때를 생각해보자. 혹은 좋아하는 구두를 사서 처음 신고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때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모습에서는 오로지 안경이나 신발에만 눈이 간다. 멀리서도 안경테의 색과 형태 또는 구두에 있는 아주 작은 장식까지 뚜렷이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우리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느냐에 따라 세상은 다른 모습으로 인식될 수 있다. 만약 머릿속에 자신이 극복하고 개선해야 하는 단점들로만 가득 차 있다면 어떨까? 처음 만나는 사람이든 늘 함께 생활하는 동료든 그들에게서 주로 발견하는 것은 내가 집중하고 극복해야 할 단점과 관련된 것들이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은 자신이 지금 집중하고 있는 단점들로 가득 찬 세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좋아하고 또한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타인에게서나 혹은 자기 주변 세상에서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만 주로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자신이 좋아하는 본성들로 가득 차 있어 보다 경쾌하고 다채로운 모습일 것이다.



장점도 단점도 모두 자신의 본성


본인이 가진 장점에 집중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자기 본성에 역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외부로 자신을 발산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내 성격이나 성향에 있어 장점이든 단점이든 모두 내 본성에 속하는 것이다. 마치 단점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혹은 떨어내야 할 먼지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 단점도 내 본성에 속한 것이다. 따라서 단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한편으로는 내 본성을 거스르는 노력이다. 내면에 있는 충동과 열정을 억누르려는 시도와 같은 것이다. 반대로 장점에 집중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충동을 따르는 것이다. 본성을 억누르지 않고 오히려 극대화하여 외부로 표출하는 것이다. 


물론 단점을 개선하거나 극복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단점도 본성이니 억누르지 말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쏟아붓는 에너지, 즉 본성을 억누르는 에너지를 차라리 장점을 극대화하는데 집중하라는 말이다. 본성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발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 장점에 쏟는 열정과 의욕이 커질수록 단점을 포함하여 다른 충동들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점을 억누르느라 자신의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 혹은 인류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인물들을 한번 돌이켜 보자. 그들 역시 위대한 정신과 더불어 그 속에 단점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단점이자 어두운 본성을 극복하거나 개선하는 데에만 매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대신에 자신이 가진 뛰어난 본성 한 두 가지에 모든 정열을 바쳤다. 어떤 경우에는 단점이라 낙인찍힌 본성마저도 묵묵히 따르기도 했다. 온갖 사회적 억압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본성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간 본성에 대한 가치 판단이 시대나 문화에 따른 일시적 해석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경우이건 자신의 본성을 억누르는데 힘을 쏟기보다 자연스럽게 따르면서 발산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것이다. 그렇게 내가 가진 뛰어난 본성을 자연스럽게 따르며 극대화할 때가 곧 삶에서 정점에 도달하는 시기와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이 때는 단점을 포함해 다른 소소한 충동과 의욕들이 나타날 여지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이상화(추상화)는 일반적으로 믿는 것과 같이 사소한 것, 지엽적인 것을 ‘제거하든가 없애든가 하는 것’이 아니다. ‘주요 특징을 맹렬하게 몰아내 드러나도록 강조하는 것’이 결정적인 것이며, 그로 인해 다른 특징들이 자취를 감춰버리는 것이다
<니체,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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