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들불 Aug 31. 2020

이불 킥은 더울 때만 하자

과거는 현재에 의해 새롭게 평가된다

이불 킥!


항상 눈을 감으면 후회스러운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언제나 ‘그때 왜 그랬을까’ 자책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불을 발로 차고 있다. 이것이 잠자리에서 이불을 걷어차게 되는 '이불 킥'이다. 


사실 이불 킥 자체가 문제는 아닌 듯하다. 오히려 건전한 감정의 발산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과거 사건들이 현재까지 계속해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면 더 이상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과거를 바꾸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도 이불 킥을 만들게 하는 것은 내 의식 속에 존재하는 과거다. 그리고 의식 속 과거는 현재를 기준으로 내 안에서 늘 새롭게 평가될 수 있다. 그러니 과거 사건을 의식 속에서 지워버리거나 혹은 다시 평가하면 된다. 과거를 바꾸기 위해 꼭 타임머신이 필요한 건 아니다. 



내 의식 속 ‘과거’만이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말은 쉽다. 늘 그렇듯 실행은 어렵다. 지금 이 순간까지 자기가 했던 행동에 대해 단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 혹은 단 한 번도 후회라는 것을 해 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둘 중 하나다.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 환자이거나 혹은 모두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만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망각 때문이든 단지 내가 모르고 있기 때문이든 내 의식 속에 없는 것은 나에게 털끝만큼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것이 아무리 엄청난 사건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것을 내가 알게 된 순간부터 그리고 의식 속에 떠오를 때부터 나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거는 내 의식 속에 명백히 존재하는 과거들 뿐이다. 물론 무의식으로 들어간 것들은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다. 망각과 마찬가지로 어차피 내가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내 의식 속에 떠오르는 과거는 쉽지 않겠지만 어떻든 바꿀 수 있다. 내 의식 속 과거는 늘 새롭게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현재 내 행동과 상황에 따라 과거를 전혀 다르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담당 교수로부터 혹은 직장 상사로부터 폭력에 가까운 훈계를 받고 수치스러웠던 일을 떠올려보자.  이것은 아마도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부끄러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승진을 하거나 학위를 받고 난 이후 시점에서는 그 일들이 그저 쓴웃음 한 번에 지나쳐 버릴 수 있는 단순한 경험으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혹은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며 감사해할지도 모른다. 내 의식 속에서 과거를 평가하는 방식은 이처럼 현재 자신의 상태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현재 삶이 성취감과 자존감으로 충만하다면 수치스러웠던 과거 자체가 내 의식 속에 떠오르지도 않거나 혹은 떠오르더라도 그저 하나의 해프닝으로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수많은 이불 킥을 해보았다. 그 결과 이불 킥은 더울 때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라리 현재 삶에 충실하는 것이 낫다. 현재 삶에 따라 과거를 보다 좋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하자. 나를 망가뜨리는 건 타인의 시선과 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과거의 것을 구제하고 일체의 "그랬었다"를 "나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로 전환하는 것 - 이것을 나는 처음으로 구제라고 부른다 <니체, 구제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II>




이전 05화 단점 극복을 강요하는 사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