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현재에 의해 새롭게 평가된다
항상 눈을 감으면 후회스러운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언제나 ‘그때 왜 그랬을까’ 자책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불을 발로 차고 있다. 이것이 잠자리에서 이불을 걷어차게 되는 '이불 킥'이다.
사실 이불 킥 자체가 문제는 아닌 듯하다. 오히려 건전한 감정의 발산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과거 사건들이 현재까지 계속해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면 더 이상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과거를 바꾸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도 이불 킥을 만들게 하는 것은 내 의식 속에 존재하는 과거다. 그리고 의식 속 과거는 현재를 기준으로 내 안에서 늘 새롭게 평가될 수 있다. 그러니 과거 사건을 의식 속에서 지워버리거나 혹은 다시 평가하면 된다. 과거를 바꾸기 위해 꼭 타임머신이 필요한 건 아니다.
말은 쉽다. 늘 그렇듯 실행은 어렵다. 지금 이 순간까지 자기가 했던 행동에 대해 단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 혹은 단 한 번도 후회라는 것을 해 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둘 중 하나다.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 환자이거나 혹은 모두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만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망각 때문이든 단지 내가 모르고 있기 때문이든 내 의식 속에 없는 것은 나에게 털끝만큼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것이 아무리 엄청난 사건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것을 내가 알게 된 순간부터 그리고 의식 속에 떠오를 때부터 나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거는 내 의식 속에 명백히 존재하는 과거들 뿐이다. 물론 무의식으로 들어간 것들은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다. 망각과 마찬가지로 어차피 내가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내 의식 속에 떠오르는 과거는 쉽지 않겠지만 어떻든 바꿀 수 있다. 내 의식 속 과거는 늘 새롭게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현재 내 행동과 상황에 따라 과거를 전혀 다르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담당 교수로부터 혹은 직장 상사로부터 폭력에 가까운 훈계를 받고 수치스러웠던 일을 떠올려보자. 이것은 아마도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부끄러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승진을 하거나 학위를 받고 난 이후 시점에서는 그 일들이 그저 쓴웃음 한 번에 지나쳐 버릴 수 있는 단순한 경험으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혹은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며 감사해할지도 모른다. 내 의식 속에서 과거를 평가하는 방식은 이처럼 현재 자신의 상태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현재 삶이 성취감과 자존감으로 충만하다면 수치스러웠던 과거 자체가 내 의식 속에 떠오르지도 않거나 혹은 떠오르더라도 그저 하나의 해프닝으로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수많은 이불 킥을 해보았다. 그 결과 이불 킥은 더울 때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라리 현재 삶에 충실하는 것이 낫다. 현재 삶에 따라 과거를 보다 좋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하자. 나를 망가뜨리는 건 타인의 시선과 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과거의 것을 구제하고 일체의 "그랬었다"를 "나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로 전환하는 것 - 이것을 나는 처음으로 구제라고 부른다 <니체, 구제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II>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