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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들불 Jan 15. 2020

의병을 처형한 양반들

사상과 신념의 노예



몰랐으니까. 독립이 될지 몰랐으니까 그랬지. 내가 알았으면 그리 했겠나


영화 '밀정'에서 변절자 염석진 역을 맡았던 이정재가 한 말이다. 많은 방송인이 이 대사를 패러디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유머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그저 웃어 넘기기에는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있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세계정세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면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씁쓸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했다. 그런 암울한 상황 아래서 말이다. 그들이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대부분 그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었고 한편으로는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 강인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벼랑 끝에 서서도 굽히지 않는 확고한 신념에서 오는 것일까?



강인한 정신 vs 확고한 신념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빼앗겼을 때 다시 국권을 되찾고자 하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이들은 많았다. 그중에는 대한제국의 부활을 바라며 유교 사상과 기존 질서 회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었다. 복벽주의자로 불린 사람들이다. 또한 외세의 억압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의병활동을 벌인 민초들도 있었다. 각자 신념은 다를 수 있으나 '외부 세력(일본 제국주의, 일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목표는 동일했다. 


그러나 의병활동에서 뛰어난 전투를 벌였던 평민 의병장들을 처형한 것은 일제가 아니라 바로 복벽주의자들이었다. 왜 그랬을까? 어처구니없게도 '양반 능욕죄'라는 죄목이었다. 복벽주의자들에게 평등한 세상 따위의 낯선 사상이 들어올 틈은 전혀 없었다. 자신들이 가진 확고한 신념을 뿌리째 뒤엎는 사상일 뿐이었다. 복벽주의자들은 그들 사상과 신념에 따라 해야 할 일을 충실히 수행했던 것이다. 그래서 함께 독립운동을 하더라도 신념에 맞지 않으면 죽이는 게 옳았다. 그들에게 있어 삶의 주인은 바로 사상과 신념 그 자체였던 것이다. 


어딘가 낯익은 모습이다. 단지 믿고 있는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종청소를 자행하고 특정 민족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을 가스실에 밀어 넣는 모습 말이다. 그들 모두 뿔 난 악마가 아니라 그저 묵묵히 자기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고 믿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맹목적 신념 아래에서는 누구나 악마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사상이나 신앙이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념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조차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인한 정신은 아니다. 오히려 나약한 정신이다.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살펴보려는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행여나 신념 안에 내포된 잘못을 깨달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은 깨닫게 되더라도 스스로를 속이려는 나약함 때문에 경직되는 것이다.



사상과 이념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언제나 새로운 사상과 이념은 삶과 생명을 억압하는 실체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되었다.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된 종교가 오히려 삶을 억압하는 도구로 변질되었을 때 종교 개혁과 인간을 위한 문화부흥 운동이 시작되었다. 영국 시민혁명도 소작농에 대한 착취와 종교적 탄압이 그 시작이었다. 짐이 곧 국가라는 전제군주와 귀족 세력들에 억압받던 시민들은 프랑스에서 혁명을 일으켰다. 일본 군국주의 광신자들에 저항하던 독립운동 역시 그 본질은 삶을 억압하는 실체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저항이 당대 주류 사상이나 신념에만 매몰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앞서 기존 유교 질서를 고수하는 복벽주의자들이 보여준 행동들로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옳은 사상과 신앙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 그들은 재수 없게 잘못된 사상을 선택했던 것뿐일까? 역설적이게도 어떤 사상과 이념도 그것을 벗어나 자유로워졌을 때만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이 생긴다. 다양한 실재를 직접 볼 수 있는 눈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새로운 사상이나 이념이 대부분 당대 주류 사상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이유이기도 하다. 


사상과 이념 속에 갇혀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강인한 정신이 아니다. 삶과 생명을 억압하는 것이라면 자신이 가진 신념에서조차 과감히 벗어나려는 정신 그래서 사상과 신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정신이야 말로 진정 강인한 정신이다.


진리의 적 - 모든 신념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483>
철학자는 항상 자신이 살고 있는 오늘과 모순 속에 존재해왔고 또한 그렇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의 적은 항상 오늘의 '이상'이었다.
<니체, 선악의 저편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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