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들불 Jan 08. 2020

하루 만에 두 살이 되는 기적

서열문화에서 비롯된 고정관념


매년 1월 1일 우리나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 


새해가 되면 우리나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나이 한 살 먹는 것이다. 모두 알고 있는 '집나이' 또는 '세는나이'라는 나이 셈법 때문이다.


우리는 집나이가 낯설거나 특이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흔히 나이라고 하면 대부분 집나이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12월 31일에 태어난 아기라면 다음날 바로 두 살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태어난 지 하루, 24시간 지났을 뿐인데 나이는 두 살이 되는 것이다. 나이란 원래 그 사람이 태어난 지 몇 년이 지났는지를 가늠하는 단위다. 국어사전에서 나이에 대한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다.


나이

[명사]

1. 사람이나 동ㆍ식물 따위가 세상에 나서 살아온 햇수.


이처럼 생명이 태어나 살아온 햇수가 나이인데 태어난 지 하루 만에 두 살이 되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집나이가 우리나라만의 고유 전통?


어릴 때 설날이 되면 항상 어른들께 듣는 말이 있었다. 떡국을 먹어야 한 살 먹는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집나이가 마치 우리나라의 전통처럼 느껴진다. 방송에서 조차 외국인이 자신의 나이를 말할 때 '한국 나이로는 OO살이에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집나이는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나이 셈법이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을 포함해 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고대부터 사용해오던 나이 계산법이었다. 사실 태어난 아기가 집나이로 1살이 되는 이유는 0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시작을 하나(1)로 셈하는 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그런데 집나이를 사용하던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은 각자 근대화와 더불어 만나이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도 법으로 인정되는 것은 만나이다. 집나이는 법적으로 보호받거나 인정받지 못한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만 일상에서 계속 집나이가 통용되고 있다. 왜 그럴까?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우리나라만큼 상대의 나이를 알고 싶어 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모든 나라의 문화를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그 어느 나라보다 우리는 나이에 민감한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나이를 중요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어른을 공경하기 위해서일까?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서열 정리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열을 위해 나이를 따져보는 문화는 유아기부터 자연스럽게 학습된다. 어린이집에 모인 아이들을 생각해 보자. 사실 여기서 무슨 서열 따위가 중요하겠는가. 전혀 필요 없다. 그러나 한 살이라도 많으면 반드시 형이나 누나라고 불러야 하고 또 불려야만 한다. 형한테 혹은 동생한테 그러면 안된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는다. 두세 살 정도만 차이가 나도 친구라는 단어는 어색해진다.


나이를 기준으로 서열을 정하는 문화는 이렇듯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학습된다. 점차 관습화 되는 것이다. 직장 내에서 더 낮은 직급의 사람이 사적인 자리에서는 형님으로 대접받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다툼이 있을 때나 더 이상 논리적으로 잘잘못을 따질 수 없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써 사용하기도 한다. 바로 '나이도 어린놈이....'라는 무기다.


현실에서 서열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호칭 문제다. 단지 이름만 부를 수 있는 문화와는 달리 우리는 일상에서도 반드시 이름에 접미사로 붙이는 말이 필요하다. 친한 친구 사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상대가 적당한 직함이 있을 때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난감하다. 예를 들어 퇴직한 지 오래된 분한테 이전 직함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어색하다. 그러나 대부분 마지막 직함으로 부르게 된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특별한 직함이 없는 분들의 경우에는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요즘은 직장에서도 직위를 붙이지 않고 아무개님이라는 표현이 확산되고 있는데 이것도 괜찮은 것 같다. 


이런 서열과 호칭 문화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 처음 만났을 때 꼭 알아야 할 정보 중 하나가 바로 '나이'다. 꼭 형이나 언니일 필요는 없지만 누가 연장자인지 서둘러 정해져야 맘이 편한 것이다.



집나이, 서열 중시 문화에 필요한 나이 셈법


서열이 정해져야 속이 후련해지는 우리네 환경에서는 연도를 기준으로 나이를 세는 집나이가 훨씬 편리할 수밖에 없다. 생년월일을 정확히 알아야 파악이 가능한 만나이 보다는 쉽게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띠인지만 알아도 나이를 알 수 있다. 언제 졸업을 했는지, 언제 군대에 갔는지 등의 간단한 생활 정보만 있어도 귀신같이 알아맞힌다. 사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정말 존경스럽다.


나이를 서열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어릴 때부터 학습되기 시작해 사회생활을 통해 경험적으로 더욱 고착화되는 것이다. 특히 서열화가 필요 없는 영역일수록 서열을 매길만한 적당한 기준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나이가 매우 편리한 기준이 된다. 앞서 어린이집 혹은 친목 동아리 모임 등이 그렇다. 


그런데 집나이를 만나이와 함께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불편하다. 대한민국 법률상 부동산 계약부터 모든 공적 문서에는 만나이만 써야 한다. 여권이나 해외에서 통용되는 모든 증명서도 마찬가지다.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만나이' 뿐이다. 


당장 집나이를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때 집나이를 사용했던 동아시아 국가들 중 유독 우리만 실생활에서 버리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나이는 생명이 세상에 나온 햇수(년수)일뿐 다른 의미는 없다. 삶은 경험의 밀도가 중요하다. 단순히 시간이라는 양은 머릿속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나라 '집나이'라는 문화 속에 숨어있는 서열에 대한 고정관념을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이전 14화 신은 왜 죽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