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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송 Jul 30. 2024

기다리던 적막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 같은 적막 

퇴근이다. 곧장 집으로 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다. 중문을 열고 들어와 형광등과 TV를 켠다.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다 아무 채널이나 틀어놓고 정리를 시작한다. 어둠과 고요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빛과 소음이 없는 공간에서 큰 불안을 느낀다.

출근해서도 혼자 있는 공간이라 학생들이 오지 않으면 내내 조용하다. 역시 똑같은 루틴. 불을 켜고, 컴퓨터 전원을 누르고 유튜브에 들어가 모닥불 소리, 잔잔한 연주 같은 것을 틀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고요함은 어딘가 모르게 공포스럽다. 내게 적막을 깨뜨리는 행위는 중요하다.

이런 내게도, 기다려지는 적막이 있었다.
고3, 야자를 마치면 늦은밤이였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는데, 집 가는 골목이 몹시 어둡고 스산했다. 인기척이라곤 황급히 지나가는 길고양이뿐이었다. 야자를 마치고 길목에 들어서면 저 멀리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아빠다..!


빠는 늘 그렇게 골목에 서서 나를 기다리셨다. 멀리서 내가 오는 걸 발견하고는 담배를 끄고, 눈 한번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 끄덕하신다. 그게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인이었다. 무뚝뚝했던 아빠와 그런 아빠가 어려웠던 나. 서로 손을 흔들지도, 웃으며 반기지도 않았다.


내가 조금 더 걸어 아빠가 있는 곳까지 도착하면 "아빠" 한마디 건네고, 아빠는 "응" 대답하곤 말없이 걸었다. 그곳에서 집까지 3분. 빛과 소음이 꺼져버린 적막의 시간. 아빠는 내게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이게 아빠의 최선의 다정함이라는걸.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 같은 적막. 그 따뜻함이 그립다.

.
.
.
.
.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 멀리 보이는 아빠에게 양손 흔들며 "아빠" 부르곤 달려가 팔짱을 낄 것이다. 재잘 재잘 오늘 있었던 일을 늘어놓으며 적막이 가득한 동네를 우리의 소리로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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