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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송 Aug 01. 2024

내 인생 가장 잘한 일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집에서 5분 거리로 가까웠다. 인근에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고 있었고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현대아파트에 살았다. 우리는 현대아파트 놀이터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 그 시절 유행하던 분신사바 놀이를 오밤중에 하다 소릴 지르며 혼비백산으로 흩어지곤 했다. 자연스레 친구들은 각자의 동으로, 나는 아파트를 나와 내리막길을 한참 걸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우리 집은 차가 다니는 길목 어귀에 있었다. 셋방 살이를 전전하던 집 중 그나마 큰 집이었다. 화장실은 집 밖에 있었고 밤마다 굳은 마음을 먹어야만 볼 일을 볼 수 있었다. 부엌에서 가끔 깜짝 출연하던 쥐들은 엄마의 빗자루 스윙에 하나같이 도망가기 바빴다. 


그 무렵 부모님은 학교 앞에서 작은 옷 수선 방을 운영하고 계셨다. 어느 여름, 엄마는 푼돈이라도 벌 심산으로 슬러시 기계를 샀다. 하교하는 아이들의 군것질거리로 딱이었다. 문방구엔 쫀드기나 쥐포, 아폴로 같은 과자를 팔았고 그 옆 분식집에선 떡볶이나 피카츄 돈까스를 팔았지만 슬러시 파는 곳은 없었다. 없는 형편에 큰돈을 투자해 산 슬러시 기계는 한동안 반짝 잘나가는 듯했다. 엄마는 종일 초록색 주황색 슬러시를 힘차게 팔아재꼈다.


아직 여름이 한창일 때, 어느새 문방구와 분식집에서도 슬러시를 팔았다. 아이들은 옷 수선집 슬러시보다 문방구 아저씨가 파는 슬러시를, 분식집 피카츄를 먹고 후식으로 먹는 슬러시를 더 좋아했다. 엄마의 포부와는 달리 푼돈을 벌 형편도 못 되자 슬러시 기계는 곧 쓸모없어졌다. 아빠는 괜히 쓸데없는 돈을 썼다며 엄마를 몰아세웠고 잘 살아보겠다고 한 행동에 쓴소릴 듣던 엄마는 속이 몹시도 상했을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옷 수선 집 형편은 뻔했다. 무럭무럭 커가는 동안 우린 가족여행 한 번 간 적이 없었다. 여행은 고사하고 근교에 놀러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엄마의 기억을 빌리자면 아주 어릴 적 아빠 계모임에서 간 여행에 따라 간 적은 있지만 오롯이 가족만이 떠났던 여행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빠듯한 살림은 오랫동안 나아지지 않았고 어느새 부모님은 환갑을 바라보고 삼 남매는 30대가 되었다. 코로나에 익숙해질 때쯤 문득 가족여행을 가야겠단 불같은 마음이 일었다. 여름휴가에 맞춰 제주도로 떠나자! 가족들에게 여행을 들뜬 마음으로 제안하자 다들 심드렁했다. 아빠는 여행은 무슨 여행이냐며 돈 좀 아껴 쓰라고 했고 엄마는 가면 좋지 하면서도 돈이 걱정인 모양이었다. 동생들은 내심 귀찮아하는 눈치였고. 이미 지겹도록 얼굴을 본 가족끼리 무슨 여행을 가야 하는지 한 번도 함께 떠나보지 않았던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우선 가족 통장을 만들어 돈을 모았다. 시간이 흐르고 여름휴가 기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기가 짧았던 탓에 모은 여행경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무조건 여행을 추진하기로 마음먹었기에 사비를 털어 비행기 티켓부터 냅다 끊어버렸다. 가야만 하는 명분을 만드니 여동생 미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숙소를 고르고 렌터카를 예약했다. 


진짜 우리 가족끼리 여행을 가는 건가? 모두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떠나는 날까지 아빠는 꼭 가야 하냐며 탐탁지 않아 했지만 마침내 그날은 왔다.


여행 당일, 공항에 도착해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으며 여행의 시작을 즐기고 있는데 아빠의 눈동자가 바쁘다. 자꾸만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폈다. 휴가 기간이라 대부분 가볍고 밝은 옷들을 입고 있는데 아빠는 칙칙한 셔츠를 입고 있는 게 맘에 걸리는 듯했다. 공항 패션을 몰랐다며 멋쩍어하는 아빠가 귀엽고 찡했다. 엄마 아빠는 그날 공항이 처음이었다. 물론 비행기도 처음.


비행기를 처음 타는 엄마 아빠가 혹시 불안할까 싶어 아빠 옆엔 미소가, 엄마 옆엔 내가 앉았다. 생애 첫 비행에서 하늘을 맘껏 보라고 창가 자리에 두 분을 앉혔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엄마는 큰 눈으로 하염없이 창밖을 보았고 아빠는 두 눈을 꼭 감은 채로 있었다. 내려서 들어보니 창밖을 보는 게 무서웠다고 한다.


이때 알았다. 경미하지만 아빠가 공황 증상이 있다는걸.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오래 했던 나와 미소가 아무리 영화를 보여준다 해도 손사래를 치며 절대 오지 않던 아빠. 지금껏 영화를 보기 싫어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사방이 꽉 막힌 장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빠에 대해 대체 얼마나 많은 걸 모르고 산 걸까. 잘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의 이면에 어떤 이야깃거리가 숨겨져있을지 물음표가 켜졌다. 오랜 세월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온 우리가 여행을 통해 얼마나 가까워질지 알 수 없지만 간절히 바랐다. 부디 연결되기를, 이불 속 맞잡은 손을 통해 전해지던 전기처럼. 마구마구 손을 꽉 잡아 서로에게 감전되기를. 


비행기에서 내려 제주 하늘을 바라보며 예감했다. 이 여행은 분명 내 인생 가장 잘한 일이 될 것이다. 힘든 겨울을 죄다 견딘 풀들은 환호하듯 쨍한 초록빛을 내뿜고 있었다. 마치 우리에게 '너희도 그동안 잘 견뎠노라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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