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펌 예찬

몹쓸 권태로움에 대해

by 다송

출근길 동료를 만났다.

오랜만에 부는 가을바람에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날린다.

문득 그를 보니 머릿결이 참 곱다.


"저도 머리를 단정하게 펴볼까 봐요"


지금 내 머리모양은 엄마들이 질색하는 산발이다.

두 번의 히피펌 덕에 상할 대로 상해버린 머리카락,

자기들끼리 뒤엉켜 빗질조차 어렵다.

컬도 있는 둥 마는 둥 어정쩡하다.

엄마가 본다면 당장 자르라고 야단일 텐데.

고운 머리카락을 가진 동료 윤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꾸한다.


"아유, 저는 쌤처럼 펌이 하고 싶은 걸요"


머리 감고 대충 말리고 나와도 되고 스타일링도 쉬운 펌이 부럽다는 얘기였다.

그럼 우리 머리통을 바꿀까요? 하마터면 헛소릴 할 뻔했다.


아 -

내가 언제부터 생머리를 부러워했던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단정한 내 머리에 잔뜩 싫증이 나있어 놓고는.


소유하게 되면 권태로워지기 마련이다.

히피펌이 하고 싶어 몇 년을 벼르다 막상 하고 나니

예쁜 건 잠깐이고 다시 머릴 피고 싶듯이.

좋아 죽겠던 것 대부분이 결국 미지근히 식는 순간이 온다.


일상의 권태가 삶에 좋은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잦은 싫증은 그 대상과 진득하게 연결될 기회를 놓치게 하기도 한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마음이든

소유한 모든 것에 대하여 나는 충분히 머물렀는가.

단지 권태롭다는 이유로 바꿀 만큼 불만족스러운가.

여러 질문 속에 나를 던져본다.


거울을 다시 보니 히피펌 컬이 적당히 남아 꽤 사랑스럽다.

질끈 묶고 나니 색다른 모습도 보인다.

윤이 부러워하는 나의 히피펌을 조금 더 유지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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