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여행은 과분한 것이었다.
사치품 마냥 멀리 두고 한 번도 떠나지 못한 가족여행.
그런 암묵적 룰을 깨고 2년 전 제주도로 떠났다.
첫 여행을 통해 우리는 거의 최초로 온전히 마주 보았다.
삼십 년이 넘게 살아온 부부도
서롤 바라보지 않은지 오래됐고
삼 남매도 각자 일상에 쫓겨 여유가 없었다.
여행이란, 앞만 보고 걷다가 또 다른 길을 걷다가
마침내 서로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다.
제주의 추억은 그간 우리의 안주거리였다.
모이기만 하면 머물렀던 명월리 얘기,
기깔나게 맛있었던 물회 얘기,
협재를 물개처럼 휘저으며 다니던
아빠 얘기에 웃음꽃이 폈다.
안줏거리가 떨어지기 전에 다시 떠나자!
올여름, 우린 경주로 여행을 떠났다.
제주에서는 3박 4일의 일정이었고
경주는 1박 2일의 여행이었다.
그래서 경주의 밤은 더 특별했다.
한 밤 자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종일 뙤약볕을 돌아다니다
지친 몸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저마다 조금씩 나른해져
누우면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았지만
잠들기가 아쉬워 거실로 모였다.
각자 좋아하는 메뉴를 미리 골라
야식 준비를 마쳤고 준비해 온 와인을 땄다.
쨍쨍, 와인 잔 부딪히는 소리가 피곤을 깨웠다.
살짝 마음이 달궈진 그때
미소가 주섬주섬 종이를 꺼냈다.
사실 오늘 이벤트로 준비한 게 있다고.
언니가 엄마, 아빠에 대해 쓴 글인데
읽어봤으면 해서 들고 왔다고.
그간 내가 쓴 가족 에세이 중
몇 편을 골라 인쇄해 온 것이었다.
미소는 내 글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면서
내가 쓰는 글을 많이 읽은 독자기도 했다.
미소가 뽑아온 글을 엄마, 아빠에게 건넸다.
먼저 엄마가 글을 읽어 내려갔다.
언젠가 부모님이 내 글을 읽는 상상을 오랫동안 해왔다.
어떤 표정을 지을까, 무슨 생각을 할까.
눈앞에서 그 광경을 목도했다.
글 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엄마와
현재의 엄마가 만나는 묘한 순간이었다.
엄마는 자신을 녹여낸 글을 소리 내 읽어 내려갔다.
점점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경상남도 창녕, 7남매 중 여섯째로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엄마의 생은 녹록지 않았다. 삼 남매를 낳고 기르면서도 안 해본 일 없이 치열하게 살아왔다. 가발 공장, 신발 공장, 호떡 장사, 떡볶이 장사, 토스트 장사, 화장품 판매, 옷수선, 재봉틀 작업.. 나열하기도 힘든 일들을 가난을 견디기 위해, 자식새끼들 입히고 먹히려 신명 나게 해 왔다. 애석하게도 호기롭게 시작한 일의 끝은 언제나 본전도 못 찾고 끝났지만.] - 엄마의 청춘 中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그녀의 생인데
몇백 자로 함축한 글은 더했다.
낭독하는 엄마와 쓴 나,
그걸 보는 모두가 함께 눈이 붉어졌다.
아빠는 돋보기를 가져오지 않아
글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미소가 나보고 대신 읽으라며 종이를 건넸다.
제목이 '아빠에게'로 시작하는 무시무시한
눈물 폭탄의 글이었다.
그런 글을 아빠 앞에서 낭독해야 하다니.
상상만으로도 턱 끝까지 울음이 차올라 낭독은 실패였다.
모두가 다 낭독을 고사했다.
아빠는 종이를 고이 접더니
돌아가서 혼자 보겠다고 했다.
시간이 흐른 뒤 아빠에게 물었다.
글 읽어보았냐고, 어땠냐고.
아빠는 "쫌 미안하대.."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제 그만 미안해하라고 쓴 글인데 왜 또 미안하대.."
나도 아빠를 따라 말 끝이 흐려졌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이
휘발되지 않도록 꾹꾹 눌러써야 할 임무가
내게 주어진 것만 같다.
추억은 글이 되고 글은 또다시 추억이 된다.
언젠가 이 글도 가족들 앞에서 낭독하는 밤이 오려나.
그땐 울지 않으며 읽어 내려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