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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온다

앓고 잃다가만 끝나지 않아

by 다송

괜찮아질 거란 말이 야속했다.

모든 게 일그러지고 있던 삶 속에서

평안한 미래를 그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쏟아지는 불안이 내게 준 건 불면과 우울이었다.

자려고 누우면 생각났다.


내가 했던 실수들, 내가 망친 관계들,

그리고 진짜 망해버린 내 인생.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면 코끼리만 생각나듯

멈추려 할수록 사로잡혀버렸다.

잠들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그땐 내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습도 가득한 여름 한가운데 서있는 기분이었다.

도무지 가을이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바람이 부는 곳으로 피할 기력도 없었다.

내게 그런 피할 곳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우울이란 그런 거였다.

여름 중의 여름을 만나도 피할 의욕마저 없어지는 것.

나는 마음껏 앓고 앓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지우개로 지울 수 있는 생이라면 좋을 텐데

고스란히 남은 흔적은 나의 역사가 됐다.


단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비겁하거나 옳지 못했다는 수치심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반성과 성찰의 연속,

나아가기 위해 지독하게 뒤를 돌아봤다.


온몸으로 계절을 통과해 낸 덕에 결국 가을이 왔다.

계절은 바뀐다는 사실을 비웃듯 여름이 길고 길었지만

이내 선선한 바람이 불고 거리는 단풍으로 물들었다.


여름 한가운데 절망적으로 서있던 내게 가서 속삭이고 싶다.

가을이 온다고, 분명 온다고.

조금만 돌아보면 미풍을 불어줄 사람도 있었다고.

이 이야기는 앓고 잃다가만 끝나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고 살아내 준 나에게

가을은 환상적인 하늘로 보답할 것이다.

찰나의 계절이래도 좋다.


다 지나간다는 말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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