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다 못할 마음

쓰담쓰담, 다 안다고

by 다송

아빠가 방에 오면 자는 척을 했다.

무섭기도 하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술이 거하게 취한 아빠가 방문을 열면

나는 눈을 꼭 감고 잠든 척을 했다.


그는 동생과 내가 자는 방에 들어와

창문이 잘 닫혔나 확인하고

이불을 똑바로 다시 덮어주었다.

그리곤 아무런 움직임 없이 가만히, 시선이 느껴진다.

눈을 감고 있지만 우리를 보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을 감았는데, 분명 감았는데

신기하게 아빠 얼굴이 보였다.

어떤 날엔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표정,

어느 날은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얼굴이었다.

또 한 날은 삶의 무게에 찌들어 괴로워했고,

어떤 날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눈가가 젖었다.


말로 다 못할 마음을 담고

잠든 우리를 바라보던 아빠,

오직 나만 아는 순간이었다.


경상도 남자, 말 그대로 가부장 중 가부장이었던 아빠.

다정히 말 한마디 건네는 게 어려웠을 그가

우리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얼마나 수없이 말을 건넸을까.

귀로 듣지 못했지만 마음으로 전해진 아빠의 말들이

내 속에 고스란히 남았다.


그때로 잠시 돌아가는 상상을 해본다.

자려고 누웠는데 인기척이 들린다. 아빠다!

눈을 꼬옥 감는 대신 동그랗게 뜨고는

아빠를 살필 것이다.


그가 지쳤다면 와락 안기며 고사리 손으로

등을 쓰담쓰담 매만지고 싶다.


다 안다고, 나도 아빠 마음 다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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