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만든 인연

어떻게 여기서 다시 만나?

by 다송


가끔 인연이란 걸 생각하면 신기할 때가 있다. 각자의 삶에 필요한 시기에 찾아오는 사람이 종종 있다. 내게도 특별하게 찾아온 한 인연이 있었다.


몇 년 전, 한 남학교에서 일하고 있을 때 였다. 전문기관을 정해 적성검사를 실시하고 기관에서 강사를 파견해 해석 수업을 진행했다. 소란스럽고 귀여운 중1 아이들의 검사 해석 날, 교실 뒤에서 수업을 함께 했다. 시력이 급격이 나빠져 렌즈나 안경을 꼭 끼는데 하필 이 날 아무것도 챙겨오지 않아 앞이 어둑어둑한 상태였다.


강사가 들어와 검사 해석을 시작했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겨우 아이들을 살펴가며 자리를 지켰다. 강사는 열정적으로 수업을 이어갔다. 지금껏 들었던 해석 중 가장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고 아이들을 집중시키는 단단한 어조에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아니, 사실 그보다 이 목소리! 어딘가 익숙했다. 설마설마하며 미간을 찌푸려가며 얼굴을 들여다보다 깜짝 놀랐다. 킴이었다. 오 세상에, 어떻게 킴이 여기에? 킴은 나와 오래 전 알고 지낸 지인이었다. 따로 연락하거나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기에 서로의 근황을 모른채로 지냈는데 서로의 일터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놀람도 잠시 킴은 나를 향해 웃어 보이더니 손을 휘휘 저으며 나중에 얘기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눈이 잘 안 보였던 나와 달리 킴은 시작부터 나를 알아보았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킴과 마주했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반갑다 못해 신기해서 손을 잡고 둥실둥실 흔들었다. 킴은 심리검사 기관에서 일하고 있었고 해석차 내가 있는 학교에 온 것이다.


"밖에서 따로 한번 봐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약속을 잡았다. 흘러갈 사람이었다면 말뿐인 약속으로 끝났겠지만 우린 머지않아 만났다.


낯설고 조금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식당을 찾았다. 주문한 밥이 나왔고 적당히 허기를 채우곤 대화에 온 정신을 쏟았다. 음식도 여운도 잔뜩 남은 만남이었다. 그날 우린 그간의 공백을 메울 수많은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날 돌아오며 생각했다. '우연이 인연이 된다면 좋겠다'


바람대로 이후에도 이따금씩 킴과 만남을 이어갔다. 힘들 때, 심심할 때, 맛있는 게 먹고 싶을 때. 만날 이유는 많았다. 킴은 점점 내 삶에 녹아졌다. 함께 있으면 뭐랄까 별 탈 없이 행복했다. 그는 멈춰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만날 때마다 배우며 성장하고 있었다. 킴의 성장을 응원하며 나도 함께 자랐다.


과거에 우리가 어떻게 만났고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는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그랬던 그가 어느 순간 인생에 특별한 존재가 돼버렸다. 나의 시절에 때에 맞게 등장한 그가 참 고맙다.


그날 만약 우리가 우연이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짐작컨데 단 둘이 따로 만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마치 패자부활전을 거쳐 올라온 가수 지망생이 뜻하지 않은 주목을 받듯 킴은 내 삶에 히트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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