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름 장미 다발을 들고 현이 나타났다.
21살 5월 21일 성년의 날, 우리가 사귄 지 딱 10일째 되던 날이었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우리는 대부분 수업을 함께 들었는데
하필 그날은 교양 때문에 시간표가 달랐다.
먼저 수업이 끝난 그는 일이 있어 집에 먼저 간다는 말을 남기고 학교를 떠났다.
성년의 날은 스물한 살 대학생들을 들뜨게 하기 충분한 이슈였다.
괜스레 농담 섞인 축하를 보내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념일을 즐겼다.
사회인으로서의 책무와 성인으로의 자부심을 부여하기 위해
지정된 날이라는데 친구들이랑 있으면 어쩐지 더 어린아이가 되는 것 같았다.
남자친구와 저녁 만남에 한껏 들떠있는 이도 있고
우리끼리 뭉치자며 학교 근처에서 치맥을 약속하는 애들도 있었다.
그 틈에 끼여 남자친구는 있지만 약속은 없었던 나는
심드렁하게 눈동자만 굴렸다. 고요한 핸드폰만 괜히 얄미웠다.
수업을 듣는 동안 사라진 현은 미리 봐둔 꽃집에서 장미를 주문했다.
그의 인생에서 처음 구매한 꽃이었다.
수업 마치는 시간을 계산해 학교 아래서 기다리다 내게 전화를 걸었다.
얄밉던 핸드폰이 사랑의 메신저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학교 밑에 있어, 여기로 올래?
-집에 간다더니 안 갔어? 지금 내려갈게!!
친구들을 뒤로하고 내 사랑을 하러 현이 있는 곳으로 갔다.
멀리서 보이는 그의 손에 새빨간 꽃이 들려있다.
배시시 그가 웃고 있는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사귄 지 10일 된 남녀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났다.
서로 가까워질수록 더 크게 웃었다.
짠, 하고 내미는 장미꽃.
내 인생에서 처음 선물 받은 꽃이었다.
꽃이 너무 좋은데 그는 더 좋아서 손을 잡고 발을 동동거렸다.
처음 꽃을 사보는 남자와 처음 꽃을 받은 여자는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이 다정한 남자와 오래오래 무수한 기념일을 챙기고 싶었다.
6년의 연애 끝에 마침내 그는 내 남편이 되었다.
성년의 날 받은 장미는 내가 그에게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꽃이었다.
초현실주의자인 현은 예쁜 것보다 실용적인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꽃을 사주는 대신 꽃을 살 돈을 보태 필요한 선물을 사거나 맛있는 밥을 먹었다.
성년의 날이 지나고 몇 해 뒤 로즈데이였다.
장미를 사 오라고 장난스레 말했더니
장미가 그려진 초콜릿을 사 왔다.
장미 초콜릿을 사 온 현이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헛웃음이 났다.
장미는 안 사 와도 장미 초콜릿은 사 오는 그와
함께 할 미래를 그리며 초콜릿을 나눠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