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다슈니
유행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문득 포켓몬 GO가 열풍이었던 몇 년 전 겨울이 떠오릅니다. 두툼한 패딩에 목도리와 장갑, 핫팩까지 완전무장을 하고, 망나뇽을 잡겠다며 둘이서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던 그 시절 말이에요. 당시엔 추위도 잊은 채 화면 속 포켓몬을 쫓아 처음 가보는 골목길을 탐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렜죠.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무언가에 푹 빠져 철들지 않는 마음을 간직할 수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 같습니다.
최근 저는 산 등반에 푹 빠져 있습니다. 호 씨와는 대한민국 100대 명산 중 산림청, 블랙야크, 한국의 산하, 월간 산에서 공통으로 선정한 그랜드 슬램 58곳 완등을 목표로 잡았어요. 동시에 친한 언니와는 서울 산 44곳 뿌시기도 진행 중입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계속해 나가는 이유를 굳이 찾자면, 스스로 세운 목표를 하나씩 밟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에요.
지난 월요일에는 서울 산 뿌시기의 일환으로 관악산 연주대에 다녀왔습니다. 마침 폭설 예보가 있어 전날부터 기상 정보를 뒤적이며 걱정했는데, 그러다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어요.
최근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관상가가 운이 막혔을 때 오르면 좋은 산으로 관악산을 추천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관악산은 서울 인근에서 기운이 가장 좋기로 유명해, 같은 소원을 세 번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이 소식을 산행 메이트인 언니에게도 얼른 공유했습니다.
함께 산을 타는 이 언니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져 온 소중한 인연입니다. 성향도 참 비슷한데, 실제로 ADHD 성향이 조금 있는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시너지가 폭발해요. 이날도 서울대입구역에서 버스를 타고 수다를 떨다 무려 6정거장 일찍 내려버렸죠. 그런데도 누구 하나 스트레스받지 않고, 이참에 워밍업 삼아 걷자며 다시 신나게 수다를 떨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덕분에 서울대 캠퍼스도 실컷 구경하고 관악산도 무사히 잘 다녀왔어요.
새벽까지 내린 눈 덕분에 연주대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가지 위 눈발이 흩날리며 마치 영화 속 장면에 들어온 듯했고, 꽁꽁 언 계곡을 보며 얼마 전 함께 본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악(岳)’자가 들어간 산은 험하다는 말이 있지만, 이번에 경험한 관악산 코스는 생각보다 안전하고 친절하게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등산로 입구에서 한 번, 기도실에서 한 번, 그리고 정상석 앞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이렇게 세 번에 걸쳐 호돌 씨와 저의 안녕과 평화를 정성스럽게 빌었습니다. 산 정상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소원을 되새기니, 막혀 있던 운이 정말로 시원하게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랜드 슬램 미션 달성을 위해 우리는 매달 한 번씩 산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 남은 산은 51곳. 이번 달 후보지는 소백산, 계방산, 그리고 팔봉산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산에 오르게 될까요? 어떤 산이 우리를 맞이해 줄지, 그 산에서 또 어떤 눈부신 풍경을 만나게 될지 벌써 마음이 설렙니다. 든든한 완등 메이트 호돌이와 함께라면 남은 여정도 분명 즐거울 거예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소원도 관악산의 기운을 타고 부디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다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