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내가 머물던 곳

부부 교환일기 by 다슈니

by 다슈니와 호돌이

#26년 2월 11일

수요일



지난달 말, 오랜만에 제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극단의 40주년 신년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한성대입구역에 내리는 순간, 20년이라는 세월을 건너뛰어 다시 마주한 연습실. 문을 여니 눅눅한 바닥 냄새와 함께 잊고 지냈던 나의 20대가 스르르 밀려왔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세상 물정 하나 몰랐고, 연극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던 아이였지요. 사실 그곳과 관련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 오징어입니다.

20년 전 극단은 단원들이 직접 식사를 해결하는 시스템이었어요. 요리라곤 라면밖에 모르던 저에게 떨어진 첫 임무는 <2만 원으로 20인분의 점심 준비>. 패닉에 빠진 저는 엄마에게 S.O.S를 쳤고, 엄마는 특제 양념에 재운 오징어를 보따리 가득 싸주셨지요.

“가서 볶기만 하면 돼.”

그 말을 믿고 든든하게 인천에서 서울행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동대문역에서 번쩍 눈을 뜬 순간 깨달았어요. 내가 내려야 할 역이었고— 오징어는 그대로 선반 위에 있다는 사실을요.

승강장에 혼자 서서 ‘나이스 타이밍’을 외치던 그 승리감이 0.1초 만에 절망으로 바뀌던 순간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분실물 센터에 전화해 “양념된 생오징어 뭉치를 잃어버렸다”고 말했을 때 직원분의 긴 침묵도요. 그분도 황당했겠죠. 지금 생각하면 저도 웃음이 납니다.

결국 오징어는 돌아오지 않았고 저는 선배들에게 울먹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어요. 연습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선배들은 저를 위로하며 시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렇게 다시 산 오징어로 끓인 칼칼하고 시원한 오징어뭇국. 잃어버린 엄마의 오징어볶음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날의 오징어뭇국이 제 인생에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 최고의 미식입니다.

신년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놀랍게도 20년 전과 거의 그대로였어요. 마치 그 공간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날 참석자 중 제가 여전히 막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연습실 옆 작은 사무공간에서 오래된 화이트보드를 보게 되었어요. 여러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는데 제일 위 칸에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익숙한데, 믿기지 않는 글씨체. 아무리 봐도 제 글씨가 맞았지요. 20년 동안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던 나의 글씨.

손으로 화이트보드를 쓰다듬으며 생각했습니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살고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결혼도 하고, 연극과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리라고.

막내였던 저는 건배사를 부탁받았어요. 조금 쑥스러웠지만 이렇게 외쳤습니다. "극단이여, 영원하라!"

상투적인 외침이었지만 진심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공간에 모여 연극을 하는 이들이 있고, 2만 원으로 20인분을 해내려 쩔쩔매던 서툰 막내를 여전히 기억해 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 서툶이 예술보다 뜨거웠던 시간들. 그 풍경들이 오래도록 변치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주길 바랐습니다.

김쥬둥 씨, 우리 연습실 근처에서 데이트했던 거 기억나죠? 그때 우리는 참 풋풋했고, 당신은 극단 막내였던 나의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들어주던 사람이었잖아요. 이제는 길 건너로 자리를 옮긴 나폴레옹 제과점처럼 우리도 조금씩 변해왔지만, 그 시절의 달콤함은 여전했으면 좋겠어요.

조금 더 따뜻해지면 같이 한성대입구역에 가요. 예전처럼 나폴레옹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고, 우리의 추억이 묻어있는 낙산공원 길을 천천히 걸어보고 싶어요.


20년 전이 그립지만, 그래도 지금이 더 좋은 다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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