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밖을 넘지 않던 말소리가 웃음소리가 되기까지

부부 교환일기 by 다슈니

by 다슈니와 호돌이

#26년 2월 19일

목요일



명절 연휴가 끝났습니다. 어제 4박 5일간의 긴 명절 순회 일정을 마치고 드디어 우리 집으로 귀환했네요. 집이라는 게 참 묘하죠.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닌데,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발을 들이는 순간 비로소 마음이 말랑하게 풀리니 말이에요. 그 익숙한 편안함에 기대앉으니 문득 우리의 신혼 초가 떠올랐습니다.


결혼 후 첫 추석, 시댁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가 펑펑 울었던 거 기억하나요? 통곡은 아니었지만, 세상 서러운 눈물이 줄줄 흐르는 그런 종류의 울음이었죠.

"어머님, 아버님이 나 싫어하시나 봐. 말씀을 거의 안 하시잖아…!"

서러워하는 내게 당신은 절대 그런 게 아니라고, 원래 우리 집안이 말수가 적어서 그런 거라고 진땀을 빼며 달래주었죠.

그땐 그 적막이 왜 그렇게 무겁고 낯설었는지. 친구들에게는 이렇게 하소연했어요. "얘들아, 나 양반집으로 시집갔나 봐. 말소리가 대문 밖을 안 넘어가!"

그 어색한 공기를 어떻게든 메워보고 싶어서였을까요. 그때부터 저는 이벤트 마니아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색연필로 꾹꾹 눌러쓴 명절 카드를 만들고 가고, 코바늘로 수세미를 한 땀 한 땀 떠가기도 했어요. 수제 하루견과 만들기에도 도전했습니다. 견과류를 사다가 씻고 굽고 볶고, 방산시장에서 사 온 약봉지에 소분해 고데기로 입구를 꾹꾹 눌러 마감하던 그 밤. 생각보다 엄청난 노가다라는 걸 반쯤 완성하고서야 깨달았죠. 김쥬둥 씨가 옆에서 같이 거들어주지 않았다면 아마 밤을 꼬박 새웠을지도 몰라요. 아버님 생신에 케이크를 굽고 당신과 듀엣곡을 준비했던 날도 생각나네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옆에 계시던 아버님 친구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치셨죠.

"아니, 아버님께 당신이라니!"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지만, 저는 0.1초 만에 가사를 고쳐 다시 불렀습니다.

"아버님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 즉흥 개사에 온 가족의 웃음보가 터졌던 그 순간. 지금 생각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풍경입니다.

요즘은 이런 요란한 이벤트 없이도 충분히 가까워진 덕분일까요, 예전만큼의 열정(?)은 부리지 못하고 있네요. 사실 지금 다시 하라고 해도 못 할 것 같아요. 약봉지를 지지던 그 집중력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떠올릴 때마다 그 서툴렀던 순간들이 가장 반짝거려요. 잘 만든 기성품 카드보다 삐뚤빼뚤한 색연필 카드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처럼요.

누군가 결혼해서 좋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거예요. 소중한 사람들이 갑자기 두 배쯤 늘어났다고요.

말소리가 대문 밖을 안 넘어가던 집에서, 이제는 제가 제일 크게 웃고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고 감사합니다. 나와 결혼해 줘서 고맙고, 이 따뜻한 가족을 기꺼이 나눠줘서 고마워요.

명절 끝의 나른한 오후, 소파에 파묻혀 이런 몽글몽글한 마음을 꺼내봅니다. 우리, 앞으로도 적당히 서툴고 아주 많이 따뜻하게, 그렇게 잘 살아요. 호호.


다음 추석엔 또 어떤 재밌는 이벤트를 준비할까 벌써부터 고민 중인 다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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