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줄게

부부 교환일기 by 김쥬둥

by 다슈니와 호돌이

#26년 2월 2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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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빨간 사춘기의 대표곡 ‘우주를 줄게’는 사랑에 막 빠진 사람의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내 전부를 주겠다는 말은 참으로 로맨틱한 말이면서 무서운 말이기도 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네 전부를 갖고 싶다는 욕망을 내포하고 있기에 그렇겠지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말이에요. 채우기 위해선 먼저 비워야 하고, 그렇기에 우주를 줘야 우주를 받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쓰고 보니 무서운 말이라고 언급한 게 문득 마음에 걸립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우주를 주고받는 일인데 말이죠. 왜 그런 표현을 썼을까 생각해 보니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걱정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우주를 받았다면 응당 내 우주를 줘야 할 텐데, 나는 그런 각오가 되어 있는가? 나라는 사람을, 전부를, 우주를 줄 수 있을까? 말로는 가벼이 할 수 있어도 오늘과 내일, 먼 미래에도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죠.

이렇게 생각하니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건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 삶의 방향성, 모양, 그 모든 걸 송두리째 바꿔나가겠다는 언약이 아닐까요. 나로만 가득하던 세상에 애써 자리를 내어주는 일. 자꾸만 들이차는 아집과 자아를 부수고 또 부수는. 사랑이란 매일매일 나라는 인간을 바꿔나가고 서로 맞춰가는 일 같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사실 가족 이야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결혼하게 되면 서로의 우주, 더 엄밀하게는 은하계를 마주해야 하죠. 독립된 항성과 행성들로만 존재하던 곳에 거대한 문명의 충돌이 이루어지는 일. 그게 바로 시댁과 처가가 생기는 사건인 것입니다.

나라는 우주의 질서도 복잡할진대 가족과 가족이 만나 새로운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하는 거죠. 당연하게도 잡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유독 말이 없고 무뚝뚝한 우리 집에 떨어진 다슈니의 외로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겠죠. 저는 다슈니처럼 상냥하고 친절한 처가에서 환대를 받았는데, 죄송할 따름이지요.

이제는 많은 시간이 흘러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졌기에 다행입니다. 시간은 참으로 많은 것들을 해결해 주는 마법의 묘약인 것 같습니다. 표현이 서툴러도 결국 그 안에 진심이 있다면 시간이 걸린다 해도, 가 닿을 수 있는 거겠지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완전히 놓이지 않는 이유는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겠죠. 저는 장모님께, 다슈니는 시어머니께. 잘 보이려고 하다 보면 무리하게 되고, 무리하면 부담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대로의 모습도 물론 사랑해 주시겠지만, 저는 어쩐지 자신이 없기도 합니다. 꾸며내지 않은 나는 나조차 미덥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가까운 이들에게 가장 마음을 많이 쓰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생각해서요. 마음을 완전히 놓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우리가 만든 우리만의 작은 우주가, 우리의 집이 가장 편해졌다는 게 다행입니다. 내가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는 안식처가 있다는 건 큰 행복일 테니까요. 양가에서 받기만 하는 것들이 많아 죄스러워하는 다슈니를 보면 저도 슬퍼집니다. 하지만 변명하거나 도망갈 수는 없지요. 마음을 다잡고 성실하게, 행복하고, 상냥하고,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할 뿐.

제 가난한 우주가 다슈니로 가득 채워진 만큼 당신의 우주도 풍요롭게 빛나길. 새해를 새로이 시작하는 설에 다짐을 해봅니다. 이번 설날에 반가운 얼굴을 보고, 좋은 인연을 만든 모든 분들의 앞날에도 찬란한 날들이 펼쳐지길 바랍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직도 세뱃돈을 받는 김쥬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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