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교환일기 by 김쥬둥
#26년 2월 12일
목요일
극단의 막내로 있던 다슈니와 지내던 시절이 떠오르네요. 우리 둘 다 대체로 궁핍했던 시절이지만, 다양한 공연은 풍요롭게 보곤 했지요. 소극장의 객석을 비워두느니 초대권으로라도 채우는 게 낫다고 하니까요. 연기하는 배우분들이나 관객 입장에서도요. 같은 업계의 동료끼리 품앗이를 하듯 초대권을 나누다 보니 저도 다양한 연극, 뮤지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연극을 관람한 적이 없었습니다. 영화와 달리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공연은 접근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비용도 상당했으니까요. 그렇기에 극장에서 연극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2004년 2월에 첫 무대를 올린 <양덕원 이야기>는 차이무 극단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저도 그 해에 작품을 봤으니 새삼 감개가 무량하네요. 관람한 지 20년이 훌쩍 지난 연극의 내용이 알알이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몇몇 장면과 감정은 남아있습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열연을 하는 배우들. 그다지 넓지 않은 관객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숨을 죽인 채 관람하는 사람들. 배우의 한숨과 숨소리까지 들리고, 맨 앞자리의 관객까지 연극의 일부로 만드는 연출. 한바탕 웃고, 숨죽인 채로 배우들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커튼콜이 이어졌지요. 다슈니는 누구보다 크게 웃고, 울고, 커다란 박수로 환호성을 보내주곤 했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이랄까요. 저는 대극장 연극이나 대형 뮤지컬보다는 소극장 무대나 뮤지컬이 좋았습니다. 비좁은 극장에서 어깨를 접고 코 앞에 있는 배우들을 보는 것도 좋고. 시의성이 있는 희곡도 좋고, 거대 자본의 냄새가 나지 않는 수수한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다양한 창작극의 매력에 푹 빠진 시기였네요. 빛나는 작가와 연출가, 배우도 라이징하던 시대가 아니었을까요.
연극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은 라이브에 있지요. 아무리 같은 배우가 같은 무대에서 같은 희곡을 연기해도. 항상 같을 수는 없습니다. 관객 또한 연극의 일부이기 때문이고, 배우 또한 사람이어서 그렇습니다. 다회차 관람이 있는 이유는 그래서겠지요. 그걸 노리고 연출이나 연기를 다르게 가져가는 경우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그 점이 연극의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합니다. 운영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말이죠. 회차만큼의 출연료와 운영비용을 배우, 극장, 스태프에게 지급해야 하는데 객석이 비면 그대로 적자입니다. 전석매진을 시켜도 돈방석에 앉는 건 아닙니다. 극장은 객석의 수가 정해져 있기에 상방이 닫혀있는 구조라서 그렇습니다. 투자를 받기도 쉽지 않고. 대학로의 유명한 기획자들이 빚더미에 앉는 건 특별한 뉴스도 아니라지요.
20년 전에도 힘들다, 죽는다는 곡소리가 나왔다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들리지 않는 듯 하니. 더 심각한 상황이겠지요. 유튜브와 SNS, OTT 등의 플랫폼 공룡들이 사람들의 관심과 시간을 독과점하는 현시대에는 말이에요.
좋은 공연이 만들어지고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동시에 그 힘든 길을 누군가에게 권할 수 없겠다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슈니가 만나고 온 극단원분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꿈과 열정은 현실의 차가움 앞에 금세 식어버리기 마련이니까요. 꿈은 때때로 우릴 비참하게 만들고 서럽게 하잖아요. 꿈의 저주랄까요. 이루어져도, 이루어지지 않아도, 인간은 꿈 때문에 괴로운 존재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연극은 지금 몇 번째 막을 지나고 있는지 궁금한 김쥬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