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교환일기 by 다슈니
#26년 2월 13일
금요일
운전대를 잡는다는 건 저의 인생 계획에 전혀 없었던 일이지요. 20대 초반, 그저 이력서 한 줄을 채우기 위해 땄던 면허증은 장롱 깊숙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신혼 초, 낡은 마티즈를 타고 함께 통영까지 누비던 시절에도 운전은 늘 당신의 몫이었죠. 저는 그저 조수석에서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쿨쿨 잠드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랬던 제가 이제는 거침없이 도로를 내달립니다. 시작은 분명 타의였는데, 결과는 저의 세계를 넓히는 열쇠가 되었어요.
운전 연수를 스무 시간 마치고 드디어 주문했던 차가 출고되었을 때, 한 달 동안 김쥬둥 씨가 기꺼이 나의 출퇴근 메이트가 되어주었습니다. 출근길은 영동대교, 퇴근길은 성수대교. 교통량이 많은 구간이라 초보에게는 거의 튜토리얼 보스전 같은 난이도였죠. 게다가 골뱅이 지하 주차장에 좁은 골목길까지. 지금 생각해도 꽤 스펙터클한 입문기였네요.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요. 함께 출근길에 오르던 첫날, 영동대교 한가운데서 들려온 경적 소리. "여보, 지금 저 사람이 나한테 빵 한 거야?" 하며 덜덜 떨던 저를요. 제 손은 하얗게 질릴 만큼 핸들을 꽉 쥐고 있었고, 차선은 또 왜 그렇게 좁아만 보였던지요. 세상의 모든 경적 소리가 다 저를 향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잠결에 깼는데, 김쥬둥 씨가 갑자기 "여보, 좌회전해야지." 하고 외치는 겁니다. 꿈속에서도 저와 함께 운전하고 있었던 거죠. 저는 졸린 눈으로 "우회전하면 안 돼?" 하고 물었죠. 당신은 잠결에도 단호하게 "안 돼. 좌회전." 다음 날 아침, 직진해도 되냐고 물었다면 허락했을 거라던 당신의 대답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내색은 안 했어도 꿈에서까지 괴로워할 만큼, 당신도 꽤 힘들었던 거겠죠. 나의 초보 운전 시절은 치열하고도 다정했네요.
그러다 어느 순간, 운전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든 달려갈 수 있게 해주는 자유. 그 자유가 생기니, 세상이 확 넓어지는 느낌이었어요.
특히 한 달에 한 번 엄마에게 갈 때마다 스스로 흐뭇해집니다. 경기도 외곽이라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복잡하고 한참 걸리지만, 차로는 금방이거든요. 운전을 시작하고 나서야 부쩍 자주 찾아가게 된 것 같아요. 엄마 댁 앞에 차를 세우고 벨을 누를 때마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합니다.
사실 제가 운전을 시작한 데에는 엄마의 영향이 컸어요. 저희 엄마도 장롱면허로 평생을 지내시다가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운전을 시작하셨거든요. 이제 시작했는데 너무 좋다며 저에게도 강력 추천해 주셨죠. 그 말 한마디가 생각보다 큰 용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본격적인 명절이네요. 어머님 모시고 영화도 보러 가고, 새로 생긴 대형 브런치 카페에도 다녀오고, 큰집에도 다녀오기로 했죠. 김쥬둥 씨, 이번엔 큰집에서 마음 편히 한잔 해도 좋아요. 제가 무사히 운전해서 모실 테니, 나만 믿어요. 호호.
무언가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는 일은 참 근사한 것 같아요. 내 세계가 한 뼘 더 넓어진 기분입니다.
당당하게 척 말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운전이 두렵기도 한 다슈니